방편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갖게 되면 아울러 마음공부도 저절로 되는 것인가?
깨달음의 의식상태와 최적의 마음공부 상태는 같은 것인가?
1)깨달음의 의식
이 상태는 의식이 작용하지 않음을 스스로 알 수 있는 의식의 상태를 말합니다.
즉 나라는 작용이 없음으로 그 무엇도 없는 것이며, 따라서 내가 없으니 주체가 없고 따라서 객체인 고통 고뇌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은 의식의 작용인데 전혀 나라는 의식의 작용이 없는 상태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밥을 먹거나, 일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등의 삶을 영위하면서 그에 필요한 의식만 작동 시키고 나머지 의식들, 즉 불필요한 감상이나 감정을 유발 시킬 여지가 있는 의식을 묶어버리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그 것을 어느 곳에 묶어놓는가 하는 점은 깨달은 사람이라면 저절로 되는 것이며, 이것을 각자는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세상을 살면서 도대체 의식의 작용을 반드시 필요한 정도만 작용시키고 기타 감상, 감정(즐거움과 고통 사랑과 미음)등에 전혀 작동 시키지 않고 살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자체는 어느 정도 스스로 통제가 된다고 해도 최소한의 정도는 반드시 노출 시켜야 세상살이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만약 완전히 통제한다면, 그것은 목석과 다름없다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점에서 후속적인 마음공부도 필요 하다고 볼 것입니다.
각자라면 인간의 존재, 의식 작용의 실체, 본래면목, 영원불멸, 등에 대한 즉, 불가의 공에 대한 증득이 있으므로 후속적인 마음공부는 무척 쉬운 것이라 할 것입니다.
깨달음은 하나이나 부처의 숫자가 그렇게 많은 것은 마음공부의 상태는 천차만별이라 할 것입니다.
2)마음공부
세계에서 가장 못 산다는 버어마에 가면 그야말로 문명의 혜택은 거의 전무하여 잘사는 사람이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항상 밝은 미소와 함께 즐겁게 생활합니다.
누가 “당신은 행복 합니까?”하고 물으면 항상 누구든지 “난 행복합니다” 라고 답합니다.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불가에서는 극락정토는 마음먹기 달렸고 그 장소에서 네 자신이 행복하다면 바로 그곳이 극락정토 이다.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어느 선사의 가르침 중에서는 에디오피아 못사는 나라에서 살다가 한국에 와서 행복하게 살면 이곳이 극락정토이며, 살다가 다시 고통스러운 것으로 변했다면, 이곳은 바로 지옥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은 외부적 요인이 아니고 당해인의 마음상태라는 점을 모든 선사들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즉 당장 죽어가는 암 환자도 행복할 수 있고 억만금을 갖고 있는 재벌도 불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마음상태가 가장 최적 또는 그와 비슷한 상태로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음공부이며, 또한 마음공부가 되었다면 말 그대로 마음 먹은데로 되는 경지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모든 것은 마음에 나왔고, 만법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3)마음공부의 어려움
누구든지 한번 갔던 길을 다시 가는 것은 쉬우나 전혀 길도 없는 곳을 스스로 만들어 찿아 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마 이 마음공부를 찿아가는 길은 대부분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니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포기한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이 길을 찿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 고통과 고뇌의 삶을 살면서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 경험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의 행복이란 한 순간의 성취감 등이 아닌 은은하면서 지속적인 상쾌감, 해방감, 평화로움,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상태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가능하기 위하여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물질적 만족, 누구나 죽을 수 밖에 없는 죽음의 초월, 고통을 자아내는 삶의 초월, 등이 필요합니다.
4)마음공부를 위한 선행조건
위에서 말한 초월을 위하여 이러한 조건에 대처할 무엇인가 필요하게 됩니다.
종교생활을 하는 신앙인은 죽으면 천국에 가서 하느님과 함께 행복하게 영생한다고 믿음으로써 지상의 것들에 미련을 갖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초월의 계기가 됩니다.
또한 제대로 된 종교라면, “네가 현재 있는 그 곳이 천국이니 그렇지 못한 자는 진실로 천국에 들기 어렵다”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또한 신앙생활을 통하여 항상 신과 함께 있음을 체험함 으로써 위의 조건이 충족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근본적인 해탈을 위한 불도의 선이라면, 본래면목을 증득함으로써 세속의 육체를 갖고 살면서 부딪치는 그 모든 것들이 허것이며, 허상이며 실제하는 것이 아님을 증득함으로써 당연히 초월이 이루어짐으로써 마음공부는 쉬어진다고 할 것입니다.
5)초월의 문제
마지막으로 이루어지는 초월은 삶의 초월이며, 이는 죽음의 초월이 일학년이라면 삶의 초월은 6학년이라 할 것이고 이것이 된다면 마음공부도 졸업하는 것입니다.
6)마음공부의 수단으로써의 자기최면
치사한 방법이지만 이 방법은 의외로 효과적입니다.
이 최면은 적극적인 암시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즉 “나는 행복하다”라는 암시는 저로써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봅니다.
행복의 상태는 어쨌든 위에서 열거한 그러한 노력으로 이루어져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도 어쨌거나 적극적인 암시로 좋은 효과를 얻었다면 그것도 좋다고 봅니다.
어쩌면 종교의 모든 것은 이러한 적극적인 최면적 암시에 의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은 소극적인 암시입니다.
만약 참으로 참기 어려운 고통과 고민의 상태, 대부분 미래에 대한 것들이기는 합니다만, 이럴때의 암시는 “괜찮다” 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 유사한 모든 단어들입니다.
이러한 단어를 한동안 끊임없이 자신에게 들려주면 서서히 그 상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일시방편적인 것이라도 이러한 것의 도움이 없다면 마음공부는 더 힘들어 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암시의 방법은 여러 스승들의 가르침 중에도 있습니다.
6)성인라는 존재
성인이라면 일단 거의 완전하게 전반적으로 또는 전반적에 가깝게 또는 최소한 어느 특정 부분에 있어서 마음공부가 완전해지고, 더 나아가서 불필요할 정도로 오버되어 발전한 경우라 할 것입니다.
성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깨달은 각자라고 할 수 없으며, 깨달은 각자라고 반드시 성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각자라면 스스로 원하면 쉽게 성인이 될 수 있고, 성인이라면 쉽게 깨달음을 갖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각자 중에 성인이 많고 성인 중에 각자가 많은 것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