乙 甲 庚 癸 乾46
丑 辰 申 卯
68 58 48 38 28 18 8세3월
癸 甲 乙 丙 丁 戊 己
丑 寅 卯 辰 巳 午 未
戊子년 戊午월 丙申일 뇌출혈
戊子년 己未월 己酉일 辛未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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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국은 원명의 사회적환경과 의지를 보는 기준점이다.
사망을 격국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확대된 해석일 수 있다.
사회활동의 희기는 예측할 수 있으니 생사를 논하는 것은 무리다.
원명은 생지 살격으로 살인상생을 근본으로 하나 生化가 여의치 않다.
살인상생으로 살에 적응하는 인성(壬)을 활용해야 하는데
정인(癸)으로 살인상생이 부조화된 것이 문제점으로 보인다.
庚-壬-甲 : 살에 순응하는 일간으로 殺이 일간에 이른다.(生化)
庚-癸-甲 : 살에 순응하지 못하니 殺이 일간에 이르지 못한다.(生)
生과 相生과 生化의 차이에 따라 일간이 살에 적응하는 방법이 틀리다.
殺印相生은 일간이 살아가는 방편이지 생사를 논하는 것은 아니다.
殺剋으로 어렵고 험란한 상황을 참고 견디며 적응해가려는 노력이다.
月支는 生支月로 적응하고 살라고 태어났는데 癸로 살았다는 의미다.
癸는 甲이 살고자 임시변통으로 殺에 의탁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大運의 南方運운과 干의 丙丁운은 火剋金으로 살인상생의 호조건이다.
이미 원명이 살인상생인데 운로에서 食神制殺이라 말하기 곤란하다.
운로는 다만 환경적으로 살인상생을 돕는 제살적인 조건이 온것이다.
한번 정해진 운명이 팔자고 운로는 다만 환경에 적응하는 것일뿐이다.
살인상생하는 원명에게 운로의 제살은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야 하는데
손쉬운 방법으로 살에 대응할 수 있는 호조건적인 주변환경이 온것이다.
이런 환경을 평생 살아온 원명이 병진대운의 절입이 다가오는 시기는
호조건이 점점 불편한 상황으로 치달릴 수 있는 상황이라 볼 수 있다.
편재세운은 재생살을 먼저 생각할 수도 있으나 우선적으로 살인상생을
거부하고 마지막으로 식신제살로 살에 대항력을 가지려고 했을 것이다.
원명은 오행 구조상 무토 편재는 식신을 구하여 살을 제하는데 있다.
무토가 경금에게 재생살한다는 것은 잔신경을 거슬리는 것과 같다.
경금은 화의 명령으로 금생수를 할려고 하는 것이지 무토의 생을 받아
금생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토는 금생수를 조절하고 방해할 뿐이다.
인간사의 건강과 생사는 음양오행에 있다.
공통된 언어로 육신과 격국으로 접근하는 것이지 궁극적인 것은 음양오행이다.
배가 고프고 싶어 고픈사람은 없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가 되면 아픈 것이다.
이런 건강과 생사는 오행이 기준점이 되지 격국과 육신은 다만 학인간에
약속된 언어로 표현되는 기법으로 사용되는 것이지 이것이 답은 아니다.
육신과 격국에는 행동양상과 정신(혼)이 깃들어져 있는 것이다.
일간 억부용신이 있는지 없는지 알수는 없으나 건강과는 무관하다.
일간중심의 왕쇠강약으로 용신을 정하는 것은 그져 사회적 대응력을
가진 일간의 동정만을 살피는 것이지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다.
하여튼 여하튼 격국으로 접근점은 두었지만 생사의 화두는 음양오행이다.
원명은 금생수가 원활하다고 볼 수 없다. 금생수를 방해하는 것은 토이다.
원명은 목생화를 논할 수는 없으나 운로에서 화가 온다해도 목생화는
논하기는 어렵고 다만 목이 본신을 유지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금생수는 외부적인 요건이라면 목생화는 내부적인 요건으로 나이다.
금생수하는데 토극수하면 금의 입장에서는 여간 신경이 거슬리지 않는다.
우리는 쉽게 생각하여 토다하고 토운이 와서 토생금하고 금생수하면 되지,
왠 토극수를 논하는가를 말하는 분이 있다면 이글을 보지 말기를 권한다.
오행의 유기적인 음양운동이 생과 극은 동일시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상생의 기준점은 목생화와 금생수를 기준으로 토는 음양을 조절한다.
금생수는 하지 말라고 해도 하고 이순간에도 자율적인 움직임을 가진다.
토극수를 하면 금생수를 갈헐적으로 조절하고 중재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토극수는 금의 입장에서 보면 불편한 간섭현상에 불과하다.
오행의 유기적인 활동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무모할 수도 있다.
단지 토금수를 설명하기 위해 목화를 간과한다면 이것은 단식판단이다.
추절 목생화가 生化한다는 말은 본신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다.
혹여 生化를 목이 화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상이라고 말하면 곤란하다.
목생화를 간섭하는 현상은 수극화라는 생각은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행의 유기적 음양운동이 토로 귀결되고 화가 기준이 된다.
목생화를 방해하는 것을 수극화로 한다는 것은 살기위한 안간힘이다.
목생화를 방해하는 것은 목극토로 이것은 힘을 안배하지 못한 객기이다.
원명의 목생화는 본신을 지키고 유지하려는 갸륵한 저항력과 같은 것이다.
금생수가 수생목으로 해서 목생화에 이르면 얼마나 좋은 살인상생인가?
단지 육신의 구분으로만 재생살이라하는 술사는 이제 없었으면 좋겠다.
고서의 선배님들은 한귀결 한귀결 대단히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하셨다.
혹자는 재생살이 갑진 백호대살을 극하니 중궁에 빠져 사망한 것이라 한다.
묘신원진이 삼합국을 만나면 죽음에 이른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다.
신살의 근원도 알지 않고 신살을 적용하는 무책임한 술사가 아니길 바란다.
차라리 생사를 관장하는 백호대살은 토를 근원으로 하고 있는 신살이다.
그렇다고 백호대살로 원리 설명없이 간단한 댓글로 당혹스럽게 하지말자.
여튼 수생목하여 목생화도 하고 수극화를 하는 것이 오행의 상생상극이다.
필요에 따라 상생만 하고 필요에 따라 상극만 하는 것이 오행은 아니다.
목생화하는데 수극화하는 것은 살기위한 몸부림과 같다.
어떻게 하든 주변여건을 이용하여 살고자 하는 것이 목의 입장이다.
목생화하는데 목극토하는 것은 자기 소모를 하는 것이다.
순리를 따르지 않았으니 막혔던 것이 터지는 것과 같다.
시간은 넉넉치 않고 오행설명은 구차하기만 하다.
금생수와 목생화의 중간에 수생목해야 하는 원명이
토극수하고 목극토하는 일련의 상생상극이 원명에게는 불미하다.
생사의 기준점은 오행이 설되는 것은 소모되는 것으로 늙는 것이다.
오행이 극되는 것은 대치되고 대립하는 약육강식으로 쇠약자는
도태시키는 상극작용으로 상생을 돕는 것이다.
사망을 말하는 것은 토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본다.
백호대살은 지지에 토를 깔고 있는 간지들이다. 그래서 귀결점이다.
오행상 水는 소멸의 완성단계와 같은 것이다.
원명의 생사를 음양오행으로 증명하고 싶었는데,
그러나 오늘도 이렇게 시간상 마무리를 못짓고 퇴근해야 한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미 중간중간 화두에 답은 있다.
다만 근원에 대한 것과 과정에 이르는 설명이 부족하여 이해를 돕지는 못했다.
출처 : 고인이 된다는 것은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