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선택권한이 없다.
부모가 원해서 태어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부모도 원하지 않았는데 생겼으니 운명을 거역하지 않고 낳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부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개인의 운명을 말하는 것이다.
재격은 어떨결에 세상에 태어나 가정에 구심점으로 사는 것이다.
년월주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인 가운데 살아야 하는 인연인 것이다.
정재격을 교과서에서는 길신격으로 분류하고 있다.
길신격과 흉신격을 분류하는 기준은 사회기준일 것이다.
사회기준이라는 것이 결국 관기준하여 길신격과 흉신격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길신격 삼형제는 식신격, 정인격, 정관격이라 하는 모양이다.
흉신격 삼형제는 상관격, 편인격, 편관격인지,
가끔은 지덜찌리 상관격, 겁재격, 편관격이 삼형제라고 한다,
그럼 나머지 비견격, 정재격 편재격은 책에서는 길신격으로 분류하는 것은
관기준적인 관점인데 정작 일간기준해서도 길격으로 분류해야 하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비견격과 편재격은 타신으로 하여금 역활이 그때 그때 상황이 달라지니
길신격으로 한다면 수긍하겠지만 정재격을 무조건 길신격이라 한다면 부정하고 싶다.
길격과 흉격을 구분하고 나누는 관점도 관기준이라면 주관적인 것이다.
이것은 일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다.
일간이 관기준을 인정하고 나기준을 안다면 이것은 도인이나 신선일 것이다.
인간은 관을 내방식대로 인식하고 결국 나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 한개인의 운명이다.
그러니 길신이나 흉신을 나누는 기준점도 교과서대로 하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교과서에서 말하는 길흉신을 나누는 기준점에 반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한개인을 이해하고자 할때는 길흉신에 대한 고정관념부터 유연해야 한다.
하여튼 여하튼 길신격 흉신격의 기준점은 그때 그때 다름 이긴하다.
정재격은 사회적 관점으로 볼때는 길신격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관점으로 볼때는 흉신격이다를 강조하려고 허튼 소리를 했다.
이를 두루뭉술하게 정재격은요 때로는 길신격이고 때로는 흉신격이라고
대충 표현하면 되는데 이렇게 잡담이 많은 이유를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정재격은 길신격도 되고 흉신격도 된다.
사회에서 무조건 잘 살면 길신격이고 디지게 못살면 흉신격은 절대 아니다.
최근 온 국민을 삶을 허망하게 하고 운명이라는 것에 산다는 것에
회의감 내지는 밤새안녕이라고 우째 이런 일이...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있었다.
죽음이라는 것,
태어나는 것은 선택권한이 없을지라도
죽는 것은 인간만이 가질수 있는 선택권한이라지만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연애인 최진실양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데 이제 考 최진실양이 되었다.
考 상고할 고짜를 붙어 이름을 불러야 하니 보기도 듣기도 민망하기만 하다.
최근 해자축 북방 운로에 은닉하고 칩거하고 은둔하고 겨울잠자고,
이런 자기개발에 충실해야 하는 운로에 우째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는지 안타깝다.
사람이 동물인지 동물이 사람인지는 동물학자가 아니라 사람이 몬지는 나는 모른다.
겨울이 오면 왜 재충전하려 하지 않고 영원히 잠을 자려고 하는지 알수가 없다.
죽음이라는 것을 10년전에는 진술축미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여겼었다.
세월이 지나며 계미년에는 먹고 살기 힘든 민초들이 하도 자살을 하는 것을 보며
오행상 水도 죽음에 이르는 선택을 한다 여겼는데 올해 무자년을 보내며 진실을 보았다.
진술축미도 죽고, 癸水도 죽고, 子水도 죽는 것이다.
하여튼 가까운 지인들의 돌연사나 자살로 죽는자의 선택을 보고,
남겨진 가족들의 애환을 공감하며 아무런 위로를 할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깝다.
여튼 고 최진실양의 전생에서의 번민과 애환이
후생에서는 삼가 평안하기를 간절히 빌어줄 뿐이다.
子년 子월 동지가 가까워 오며 밤은 길고 낮은 짧아 질 것이다.
그러니 삶은 더욱 암울하고 외롭고 쓸쓸하고 답답하고 침울할 것이다.
그렇다고 죽는다는 선택은 남겨진 가족을 위해서라도 바른 선택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남겨진 가족을 위한 위로의 말이지 죽음을 선택한 당사자를 위한 말은 아닐 것이다.
있을때 잘하지 꼭 그런 선택을 하게끔 인도한 것이 주변환경이고 또한 사회적인 관점의 강압이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나 오죽하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죽음이란 선택이 그 누구도 사회적 관점으로 옳다고 옹호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안다.
삶의 주인공은 본인이고 본인의 선택이 사는 것보다 죽는것이 편안하다 여기면 그러한 것이다.
참을수 없는 고통으로 육체가 불편하면 치료하고 진통제로 고통을 잊으면 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깝게 여겨 공감하게 하고 위안과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마음이 아프고 절망하면, 정신이 아프면 이는 말도 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말할 수 없는 아픔이니 이는 어디가서 하소연 할 때도 없다.
상의하고 싶어도 상의할 때가 없고, 말하고 싶어도 말할때가 없고,
내가 잘살고 있는지 못살고 있는지 조언받을 사람도 없으니 이는 살아도 산것이 아니다.
정재격 살아가기를 설명하면서 사람의 마음과 정신이 아프다는 것은
육체적인 아픔과 비할바가 아니라는 것을 글로 표현하고는 싶은데 글재주가 없어서 잘 안된다.
국문과를 나왔으면 이쁘게 표현할텐데, 사회학과를 나왔으면 객관성있게 표현할텐데,
하필 전자공학과를 나와서 오아니면 엑스밖에 모르는 이진법인생이라 표현이 거칠기만 하다.
하여간 동지가 얼렁오고 동지가 지나면서 자살에 대한 동기유발은 적어질 것이다.
소멸과 생성이라는 일음일양이 생성하는 행운에 있어야할 일들을 보며 슬프기만 하다.
국민배우 최진실의 사주팔자가 정재격의 사주이다.
癸 戊 甲 戊 坤 庚
丑 辰 子 申 申
...부연설명을 하다 보니 정작 본론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정재격으로 살아가는 애환을 앞서 설명해봤는데 미루어 짐작해 보시기 바란다.
출처 : 정재격으로 살아가기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