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임수는 추분절기 이전이면 의지처에 기대어 실용화하지 못하는 교양을 쌓거나 안분자족한다면 이후가 되면 어떻게든 재고를 유통시키고 실용화하려는 현실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인물이다.
이곳에 土라는 것은 金生水의 기울기를 조절하는 용도이며, 土多하면 들어남과 숨는 것을 관여하고, 土가 높으면 金을 연결하고 水는 가두어 스미게 하는 용도로 윤택한 생활수단에 근간이 된다.
육신으로의 인다관설을 말하기 이전 金旺하여 土를 泄한다는 것을 말할때는 庚壬이 旺하여 己土가 되었을때 임수로 홍수가 나고 경금으로 자갈까지 쓸려와서 불모지가 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庚辛金이 왕하다하여 戊己土를 설한다는 의미는 결국 쓸려온 돌과 자갈을 골라낸다는 말인데 이것은 불순물을 제거하여 쓸만한 옥토를 만들고자 하는 것과 같아 마치 땅을 개간한다는 의미가 된다.
대개 추절에 戊土는 金으로 설기를 논하기 보다는 金生水를 조절하는 것으로 오히려 戊土로 부터 물길을 만들려는 庚辛金으로 壬水를 마르지 않게 하려는 의지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土를 기준하여 庚辛金이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갑을병정으로 생산에 활동하기 보다는 경신임계로 비생산적인 것에 관여하여 물류 유통에 관여하거나 문화나 예술활동에 준하는 경우가 많다.
토생금은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이라면 금생수는 실용화하는 것이다. 이곳에 화생토라는 것은 외부에서 유입되는 차관이나 물건과 같은 것이다. 우선은 금생수하는데 차선으로 토생금하고 그다음이 화생토가 된다.
상생의 흐름이 氣의 순환을 이해하는 것이고 대자연의 순리로 그다음이 수생목을 아는 것이다. 이는 한 개인이 세상속에 살아가야 하는 경쟁력이기도 하고 살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매일 그날이 그날과 같고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같은 날들이 따분하고 지루하기도 한지 사람은 필요에 의해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기도 하고 새로운 도전으로 상극(상충)을 하며 살아간다.
토극수라는 것은 살아가는 터전과 같아 쉼터이다. 수왕토약하면 사거리 오막살이나 원두막에서 사는 터전을 마련하기도 하고, 수약토왕하면 물을 많이 끌어다 쓰는 도심속에 살기도 하는 것이다.
토수의 배합이 좋으면 최신식 타워팰리스에 머물기도 하고, 토수의 배합이 거시기하면 계룡산에 움막에 머물기도 한다. 토수의 배합을 토극수한다는 것은 목이라는 백성을 정착하고자 하는 편의시설과 같다.
화극금은 불이 쇠를 제련하는 것이라 하나 인간사의 사는 모습으로 보면 火의 왕성한 사회활동을 金으로 도구를 이용하고 자동화설비를 갖추려는 것이 과학이고 선진화되어가는 삶인가 보다.
빨래는 火가 하는 것이라면 金으로 한다면 세탁기가 하는 것이다. 밥은 가마솥에 불을 때서 하는 것이라면 火이고 金으로 하면 전기밥솥이 밥을 만드는 것인데 더욱 편리해 지려는 것이 화극금이다.
金剋木이 쇠가 나무를 자른다는 선배님의 귀한 명언은 金의 입장에서 木을 다룬다면 노인네가 아이를 칼로 베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성으로 아이를 인도하고 양육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치 하루일을 마치고 정리하며 곧 바로 내일 일을 준비하려는 의지와 같아 미래를 대비하려는 의지이다. 추절에 금극목이라는 것은 마치 늘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경각심이고 미래대비와 같다.
목의 입장에서 금극목이라는 것은 도전이고 시도와 같다. 책으로 보면 일막일장이 끝나 다른 챕터로 넘어가야 하는 것과 같고, 축구경기에 전반과 후반의 차이를 똑같다고 한다면 할말은 없다.
상생의 기준은 사주원국에서 운로의 영향으로 확대되어 가나 상극의 기준은 운로를 기준으로 사주원국이 영향을 받고 반응하는 상대적인 상생상극으로 생화극제로 변화하고 진화를 한다.
토극수라는 상극을 우선시하여 금극목이라는 상극이 차선으로 된것이 사주원국인데 올해라는 것이 금극목이 첫째로 하여 토극수라는 것이 차선으로 활용되는 시절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금극목이라는 미래설정이 내가 편이로운 여건을 선택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결국 내가 상생으로 살고자 하는데 운로라는 시절에 상극이 찾아 왔으니 반응하고 응대하고 대처하는 것이 사람이다.
상생을 태만함과 안이함이라면 상극은 진취적이고 발전적인 것이다. 상생이 꾸준하게 쌓아가는 것이라면 상극은 도태할 것은 버릴 것은 버리자는 것과 같다.
상생이 영원히 함께 같이가야할 동반자라면 상극은 필요에 의해 받아 들이고 필요에 의해 버려야할 대상이니 파트너와 같다. 운명에 동반자가 있다면 파트너도 있어야 행복하지 않겠는가?
대개 춘절생이 순정을 다하여 동반자와 함께하려다 보니 왠수로 떠나보내고 가슴 아파하고, 추절생이 살다보니 파트너와 함께하다 이별할 때가 되었으니 떠나보내야 하는 안타까울 때도 있는 것이다.
상극과 상충도 필요극이다. 상생은 아름답고 상극하는 것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음양오행이라는 섭리속에 인간이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니 육신이라는 그럴듯한 인간다움을 그릴려고 하는 것이다.
순수하디 순수한 정인격이 세상을 살다보면 세상은 온통 재극인하는 시장판인데 물질로 사람의 마음을 팔고사는 세상에 오염되어 정체성이 어디에 머물지 모르고 사경을 헤메는 것이다.
돈이라는 것은 사람을 실수시키기 위해 필요한 수단인데 순수한 정인격은 돈을 알기를 돌로 알아야 한다는 것은 교과서의 내용일뿐 돈으로 사람을 실수시키고 오히려 분함을 삭이지 못함이 안타깝다.
사람의 命이 100세라고 가정하고 산다면 영생속에 200년의 기틀을 만들고 살아아할 정인격이 세파에 시달리다 보니 한낱 물질로 인해 당면한 현실에 전전긍긍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21세기의 정인격인 모양이다.
정인격이 살아가는 이유가 모두가 우러러 나오는 존경심에 머리를 숙여 감사의 표시를 받고자 한다면 주변의 어리석음을 원망하지 말고, 탓하지 말고, 모두가 스승이라 여기며 스스로 부족하다 여기는 맘이다.
귀한 육신은 귀한 만큼 때묻지 않아야 더욱 고결하게 살아갈 수 있는 법인데 어쩔 수 없이 때묻히고 살라는 현실에 마음까지 젖어서야 이성을 가진이가 선택해야할 덕목은 아니지 않나 싶다.
육신이라는 것은 인간사의 의지와 같아 지혜로서 이겨낼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한데 자각하고 인정하기 싫어 부인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이또한 무지에서 오는 양심인 모양이다.
유월 임수의 정인격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할 수 있는 덕행과 같아 큰 덕을 베풀고 쓰린 마음에 미련을 둔다면 자신을 가둔것과 같고 잊는다면 영원히 불생불멸하고 살아갈 것이다.
출처 : 酉月 壬水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