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리스트(독일어: Franz Liszt, 1811년 10월 22일 ~ 1886년 7월 31일)은 헝가리 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헝가리식 이름은 리스트 페렌츠(헝가리어: Liszt Ferenc)이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나타냈으며, 파리에 가서는 훌륭한 연주가로 인정받아 '피아노의 왕'이라 불리었다. 뛰어난 기교로 유럽에 명성을 떨쳤고, 지금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들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낭만시대 음악에 큰 공헌을 했다.
? 辛 戊 辛 乾
? 巳 戌 未
일견하여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 토다매금입니다. 토다매금이라는 것은 제한된 공간에서 辛金이라는 손가락으로 땅굴을 파서 빠삐용처럼 탈출을 시도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탈출이라는 단어는 木이 하는 것이고, 金이라는 것은 은둔과 밀폐, 동떨어질려고 하는 성질이니 그의 기질에 공감이 갑니다.
戌月에 戊土가 높이 솓았고, 年支에 未土까지 더해졌으니 시대적인 숙제를 가름해 보고자 합니다. 높고 큰 산은 辛金으로 땅을 파도 물이 나오기는 커녕, 파이프 라인에 바람만 횡하니 왔다갔다 하는 모양이 마치 퉁소를 부는 것인지, 地支에 火土가 설정되고 火剋金하니 바람불면 딸랑거리는 절간에 종소리도 같습니다.
戊土 辛金으로 고정되어 자리를 잡았고, 년주에 辛未가 피아노라면 나는 辛巳라는 것인데 마치 피아노와 내가 하나가 된양 딸랑딸랑 소리를 내는 모양이기도 합니다. 절간에 조용히 앉아 딸랑 딸랑 소리내어 피아노를 치면 지나가는 눈먼 과객이 눈길을 돌려 마음이라도 훔쳐볼까 열심히 두둘기고 살았나 봅니다.
토금이 주도하니 할 것이라고는 움직일수도 없이 손가락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고, 한정된 공간에서 시커먼 건반인 수가 개입되지 않은 무토가 노리끼리 한것도 같고, 辛金은 원래 하얀 건반인데 이도 목이 개입되지 않았는지 손때가 묻어서 그랬는지 파르스름한 옥색이 되었으니 그게 피아노인가 봅니다.
무토에 辛未는 파이프 라인처럼 고정되어 있고, 辛巳는 종을 두둘기는 중간축과 같아 딸랑이는 것인지, 두둘기면 연동작용을 하는 피아노인지는 모르나 피아노가 물건이고, 피아노를 치는 중간축이 원명의 모양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행에 10간12지를 넣으니 이러한 물상이 나오니 참으로 위험한 발상입니다.
무술미와 같은 척박한 곳에 辛金이 火金으로 소리라도 내지 않으면 고요한 적막함이 마치 관속처럼 미로처럼 후미졌고, 낡아빠진 집기나 가구는 세월속에 공기처럼 부스러지기 일보직전이니 그의 생활터전이나 환경이 럭셔리하기 보다는 마굿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드네요.
육신으로 월령에서 인비가 겸하였으니 정인이 나이고, 일간이 나가 되어, 스스로 늘 부족하다 여겨 선생에게 의지하고, 타인에게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여 평생을 살다보니 선생의 그림자가 나가 되기도 하나 봅니다.
관인상생이 관설하니 선생님보다 나은 제자는 편인으로 만들어지는 법이고, 인비가 더해졌으니 당대에는 아마도 쟁쟁한 경쟁자가 즐비했다는 것인데 그래도 자신은 정인의 정통을 지켰다는 것이고, 경쟁자는 편인으로 정통에서 또다른 독창성을 파생시켜 가던 시절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독창성이라는 것은 본디 없는 것인데 결국 형식적인 틀에서 약간 변형시켰다고 해서 창작이라 하기도 합니다. 정통이라는 세월이 가면 누군가에 의해서 자리가 잡혀지기도, 그러는 과정에서 변형되기도 함께 공감대를 형성해가기도 하니 정통과 독창성이라는 말이 다 그것이 그거인것 같기도 합니다.
술월생에게 사랑은 왜하냐고 묻는다면 그냥 혼자보다는 둘이 좋으니까이고, 느낌이 좋은 것이고, 사람의 마음을 훔치려 했지 몸은 훔치지 않으려 하였고, 몸을 훔치려 했다면 마음은 탐하지 않았으니 무엇을 가진 것인지 무엇을 탐한 것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매너리즘이 늘 외로운 법인가 봅니다.
눈으로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어찌하여 텃치하려 하는 것은 탐욕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대의 신음소리인지 숨소리가 아름다운 선율로 느껴 감응하면 되지, 연주까지 하려하는 것은 술월생의 본심은 아니었을 것인데 다만 상황이 주어지는 것에 진실하고자 했던 당신의 삶에 연민이 갑니다.
남자가 인비로 태과하여 관설되면 오시는 님 마다하지 않고 가시는 님 잡지 않으니 남녀공학에 다녔던 남학생은 여학생들의 심심풀이 땅콩이고 안주감이 되기도 합니다. 고딩 3년이면 이 여학생 저 여학생이 머물다 떠나니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아니라 반대가 되는 것이 육신의 역활론입니다.
3년동안 물론 바람 날만한 여학생은 이런 순진한 남학생은 말을 잘듣기도 하지만, 그냥 편안한 동성애에서 이성애로 전환하는데 부담없는 역활을 해주기도 합니다. 술을 처음 배울때 소주는 쓰거우니 사이다 콜라를 타서 부담없이 목에 넘기려는 것과 같은 이치로 비유하면 재미있는 비유같기도 합니다.
남녀가 유별하다고는 하나 예술가도 그렇고 장인도 그렇고, 쟁이도 그러하고 애간장 녹아나는 사랑을 해보지 않고 어찌 최고가 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에 앉아 있어도 그렇고, 辛金이 무술로 조열함이란 에로스보다는 이데아로 에로스를 승화시켜 보려는 것이 그의 열정이었나 봅니다.
辛金이 부서지고 부서져 모래먼지가 되어 허공을 날아 다닌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을 알아주는 것, 인정하는 것 자체가 사랑에 눈멀지 않으리라는 다짐도 어느새 봄바람처럼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말았으니 완전하려는 사랑은 아마도 신기루같기도 차라리 피아노 건반에 울려퍼지는 소리라고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출처 : 프란츠 리스트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