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성이 인성을 극하는 것을 재극인이라 하나보다.
재성은 일간이 관여하고 다루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이고,
인성은 일간이 지키고 보호해야하는 과거적인 문제이다.
인성의 헌신적인 사랑에 보답을 해야 하는 일간이 되어야 할지,
일간이 재성의 주변 상황에 편승해가야 할 지 판단해야 한다.
육신적 재극인이라는 의미는 긍정보다는 부정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듯 하다.
대부분 극은 나쁜것이요 합은 좋은 것이라는 선입관은 없었으면 한다.
재극인은 나쁜것이다라는 고정관념도 벗어나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인간사가 음양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좋은 것이 있으면 반듯이 나쁜 것이 있다.
또한 나쁜 것이 있으면 반듯이 좋은 것이 있다.
단순히 현실적 논리가 과거적인 논리를 극했다고 나쁘다 말할 수는 없다.
일단 재극인을 보려면 육신적으로 인성의 역활이 중요한 듯 하다.
가해자가 재성이 되고 피의자가 인성이 되니 피의자 입장을 먼저 살펴야 겠다.
인성의 역활이...
인성이 일간을 생하는데 재극인 하면
혼란, 헷갈림, 우왕좌왕 모 이런 통변을 하는것은 우선순위에 대한 문제인듯 하다.
그럼 반대로 인성이 일간을 잘 생하면
알다, 만족, 행복, 확신, 믿음, 모 이렇다는 말인데 단순히 생은 꾸준하다라는 관점도
있고 꾸준히 지식을 익히고 부모의 사랑을 받을 자질을 갖추는데 노력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극하면 아무래도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인성이 일간을 생하는 것이 긍정적인 문제만 거론했는데
부정적인 의미도 있을 것이다. 종교에 미친 광신도가 그러하고,
부모의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않는 마마보이가 그러한데
이것을 재극인 하면 오히려 타성에서 벗어나는 회복적인 국면일 것이다.
재극인의 이런 상호관계를 살펴볼때 결국
두 육신간의 상호관계가.
재>인하면 현실논리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살려는 의지가 되고,
재<인하면 구세대적인 사람이 현실적인 편이로움을 따르는 의지가 될 것이다.
결국 재와 인성의 왕쇠가 기울어 지며 왕한 것은 습성이 되고 쇠한 것은 용이 될 수 있다.
재인의 육신을 확대하면 재관이 하나로 해서 인비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고,
식재를 기준으로 관인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주체와 객체라는 상호관계적인 설정인 것이다.
財剋印은 결국 재가 인으로 가서 인을 조절한다는 의미이다.
財制印이라는 말은 들어 본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간단하게 재성이 인성을 극한다는 말은
결국 재성이 왕하고 인성이 쇠할때의 의미이다.
또한 재성이 흉신역활 이고 인성이 길신역활 일때의 의미이다.
剋과 制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더 많은 의미가 교차할 것이다.
재극인은 결국 인성에 집착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인성에 집착해봐야 안되니 재성을 행하라는 것이다.
또한 관인상생하는데 재극인하면 관을 대신하여 권한을 갖지말고,
묵묵히 재생관하는 재성으로 권한은 갖지 말고 굿은 일은 도맡고 살라는 말이다.
상관패인하는 정인을 재극인하면 자격정지나 권한 박탈을 말하면 될 것이고,
식정인하는 정인을 재극인하면 브랜드 교체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식신생재하는 것을 도식했는데 재극인하면 이것은 문제점이 해결되는 것이다.
육신은 결국 말장난처럼 현상적인 문제만 옆볼 수 있는 것이다.
격중심으로 재극인을 살펴본다면
관격의 재극인이 제일 불미한 듯 하다.
관격의 재성은 상신인데 용신인 정인을 극하는 문제이다.
격생하는 상신은 사회적인 나의 입지를 호조건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이런 호조건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주체성을 가지지 말라고 하는 말이다.
관격 인성용신은 사회적 직위에 걸맞은 실력을 가지려는 의지이다.
관격 재성상신은 인기와 여론에 걸맞은 사회적 직위가 갖추어지는 것이다.
상신이 용신을 극하는 것은 일간이 무능력하니 생겨지는 주변상황이다.
물론 일간만의 문제는 아니다.
관격에 재성상신이 격보다 왕해지는 것도 문제이다.
관격에 재성상신은 일단 격보다 쇠한 것이 순하다.
상신이 왕해버리면 재생관도 하지만 재극인도 할 것이다.
관격은 재생관 관인상생으로 이어지려면 신왕 관왕이 근본이다.
이런 조건이 안되면 재극인하여 내가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다.
세상속에 나로 살아가며 모두의 안녕을 묻고 살아야 할 것이다.
정인격의 재극인은
격에 기신인 재성이 재극인이다.
이는 순수공부만 하지 말고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공부를 하라는 말과 같다.
이또한 정인과 재성의 왕쇠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정인격이 왕하고 재성이 쇠하면 시대에 반영하는 공부를 하게 된다.
만약 정인격이 쇠하고 재성이 왕하면 시장논리에 맞춘 공부를 할 것이다.
이또한 격이주는 의미가 포함되니 공부하는 환경에 놓이지 못하고
공부를 하다 말다 한다는 의미가 되고 재성은 격용신의 희신작용도 하니
관보다 재성이 왕하게 되면 주변사람의 기대에 부흥하려는 노력에서
격을 살려보려는 의지를 보이며 이래저래 갈등과 애환을 겪을 것이다.
나는 정재격의 재극인이다.
태어나면서 시장논리가 우선하지 교과서 논리가 우선하는 사람은 아니다.
정재격의 재극인은 운명이다.
장똘뱅이가 선비한번 되어 보겠다고 용쓰고 있다.
시장바닥에서 도포를 쓰고 갓쓰고 양반흉내를 내보겠다고 폼잡는 것이다.
한손에는 책을 들고 한손에는 지갑 들고 이래 저래 저울질을 하고 있다.
재격의 재극인은 격스스로가 격용신의 기신을 극하는 것이다.
분수를 망각하고 편하게 사는 법을 알아 잔꾀를 내는 것과 같다.
돈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어 보겠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개 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써보겠다는 허구맹랑한 꿈을 꾸고 있다.
이처럼 똑같은 재극인도 10정격 각각 의미는 사뭇 다르다.
육신의 역활에 따라 다름이고 격에 따라 다름이다.
앞서 인성의 역활에 따른 재극인도 중요하지만
가해자인 재성의 역활도 중요한 변수가 되니 이 또한 요인이 될 것이다.
또한, 오행이 주는 재극인이 또 다름이다.
수극화의 재극인이라면
한량처럼 살고 싶은데 현실이 나를 괴롭히니 얼마나 안타까울까 싶다.
이대로가 편한데 불편하게 하는 현실이 번거롭기만 할 것이다.
부정적인 의미로만 해석하는 것 같아 뭣하여 긍정적으로 표현한다면,
시시비비가 뭐가 중요하냐 나는 도닦는 사람이니 나안에 행복이 있다.
그대들이 뭐라하든 나는 스님처럼 살련다. 상관하지 말지어다.
여튼 행복해 보인다. 여튼 불행하게도 보인다.
오행은 정신이 포함되지 못한 삼라만상과 같은 모습이다.
해맑게 웃는 동자스님과 같은 것이 수극화의 재극인이고,
배나오고 못생기고 보기 흉한 달마스님 같은 것이 재극인이다.
토극수의 재극인은
자기가 만들어 놓은 덧에 자기가 걸려 들어 엄살떠는 것과 같다.
말하지 말고 행하지 말아야 하는데 잘난것이 문제이고,
세상에 관여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올가미가 씌워지는 것인데
조용히 사는 법을 알면 나도 편하고 너도 편한 것을 알것이다.
오행의 재극인을 설명하려니 10간 12지의 재극인이 다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모두 다름인데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팔자 원국의 모양따라 그때 그때 다름이니 일률적이지 않다.
또한 육신으로 정재 편재 정인 편인의 상호관계에서.
대부분 정재가 정인을 극할때 재극인이라고 할 것이다.
편재가 편인을 극하는 것은 긍정적인 문제이고,
정재가 정인을 극하는 것은 부정적인 문제란다.
편재와 정인은 정극되지 않은 문제가 되고,
정인과 편인은 정극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출처 : 재극인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