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에게 있어 인성은 정인이든 편인이든 상생(相生)되어야 반갑습니다. 관살이 없다해도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고 관살이 있으면 어떻하든 관살을 보호하고 관살로 부터 일간이 왕해질 수 있어 관인상생이 된다면 기쁜 일입니다.
혹, 인성이 없고 근(根)으로 신왕하면 식상을 생하여 식상생재로 행하기 쉽습니다. 한 개인의 운명이 아무리 자기 잘 났다고 해봐야 스스로가 정한 틀이니, 전체에서 보면 일부에 불과하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물안에 개구리에 불과합니다.
아직은 관인상생을 근본으로 식상생재가 우세한 시대입니다. 식상생재를 근본으로 관인상생은 군주가 백성을 주인으로 섬기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군주가 꽃이라면 그 뿌리는 곧 재상이다. 꽃이 부실하다 하여 나무가 죽는 것은 아니다."
"부실한 꽃은 꺽으면 그만이나 왕은 오로지 재상을 선택하고 재상과 협의하는 자리이며 조선이라는 나무의 화려한 상징일 뿐이다"라는 뿌리깊은 나무의 밀본의 대사처럼 재상은 사대부관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인 것입니다.
"조선의 뿌리는 재상인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이어 뿌리가 되어라. 조선을 받치는 선비가 되어 뛰어난 관료들을 키워내고 현능한 재상을 세워라, 하여 조선이라는 나무가 만만세가 될 수 있도록 뿌리 중에 뿌리가 되어라."
"이것이 나 정도전이 뿌리 중에 뿌리, 숨겨진 뿌리 밀본을 만든 이유이다. 사대부들이여 이 조선의 뿌리가 되어라, 밀본이 되어라, 조선을 지켜라"라는 말이 사실여부를 떠나 국가 재건에 있어 뼈와 살을 유지하는 정신과 의지의 말입니다.
뿌리가 관인상생이라면 식상생재가 나무나 꽃이라고 할 수도 있고, 식상생재가 뿌리가 되어 관인상생이 나무가 될 수도 있으니 육신의 음양적인 해석은 시대적인 배경, 체제와 의식과 사상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르게 해석되어지기도 합니다.
조선왕조가 500년의 시작점에서는 뿌리가 중요하니 관인상생적인 의지에서 한낱 군주는 꽃에 불과한 식상생재일수도 있지만 태평성대로 과정이나 끝지점이면 관인상생이 군주나 관료이고 식상생재가 백성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관인상생 식상생재를 보수라서 관인상생이 반갑게 표현하고, 식상생재를 우물안에 개구리라 불편하게 표현 한 것은 아닙니다. 진보라서 식상생재를 실력발휘한다 기쁘게 표현하고 관인상생을 사대부적이고 고루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은 시대적인 배경과 때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남녀관계에 있어서도 처음은 식상생재로 접촉하나 나중에는 관인상생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팔자는 기준을 제시하기도 시작과 과정, 결과를 알려주는 중심일뿐입니다.
관인상생은 관례나 제도가 기반되는 배경과 같다면 식상생재는 개개인의 자발적인 개성과 능력이 행위로 되어 나타나는 모양과 같습니다. 이러한 상호적인 관계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어 갈때 500년 역사의 뿌리깊은 나무를 만듭니다.
관인상생을 정신적인 신앙으로 살피는 것은 사람의 바른생각은 천년의 뿌리가 되어 전통을 이어가게 하고, 식상생재로 행위나 몸가짐에 자유로움을 주어 능력을 자율적으로 발휘 할 수 있도록하는 가운데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식상생재는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가운데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되어야 하니 일간은 근왕한 가운데 식상생로 가야 나름 일가(一家)를 이루고 살수 있습니다. 만약 근약한 식상생재는 일가를 이루는데서 일부분 협조하라는 말입니다.
관인상생은 한결같이 부족하다 여기며 따르고 받아 들이며 수동적이려면 관왕으로 하여 인성이 왕해서 일간에 이르러야 뿌리깊은 나무에서 소이처럼 세종대왕이 최고인줄 알고 자신을 낮추어 똘복이도 군주처럼 여길 수 있습니다.
대개 관인상생이 보기 힘들다 하는 것은 관보다 인으로 일간이 왕해지면 왕를 꽃으로 하고 백성을 뿌리로 하여 남편을 꽃으로 왕으로 여기지 못하고 시원치 않으면 이웃집 남자로 바꿀 수 있다 여기니 밀본세력의 정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관인상생은 고관무보되지 않고 재생관으로 부터 왕해서 인성이 일간에 이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팔자는 대개 사주볼 일이 없는 분들인데 대개 재생관 받지 못하여 고관무보되거나 관으로 왕하지 못한 관인상생이 대다수입니다.
팔자에 관인상생이 무너진 것을 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이운이 좋다 저운이 좋다하는 일장춘몽같은 꿈은 다 말장난에 불과한데 하물며 이를 격국까지 확대하니 결국 인간사의 단편적인 욕망에 이현령 비현령하는 관인상생일 뿐입니다.
한번 무너진 관인상생이란 씨앗이 시절을 만나 잠시 꽃은 피우겠으나 그렇다고 씨앗이 바뀌는 법은 없으니 20년을 고민하지 않고 격국을 다루는 것은 고귀하게 다루어져야할 인격과 품격을 자칫 하찮게 대할까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또한 식상생재가 너무도 아름다워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세종대왕이 성군으로 기억되어져 모두가 그의 넋과 혼을 아직도 기억되어 영원히 함께하고 있는데 한낱 우물안에 개구리라 표현되어지는 것은 살아있고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기에 완전할 수 없어 만인의 우상인 세종대왕 역활인 한석규씨의 연기에서 니밀럴, 쓰 벌하는 것이 더욱 인간다운 냄새와 감정이 묻어 나와 흥미를 주기도 합니다. 결국 식상생재도 인성상생으로 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출처 : 관인상생 & 식상생재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