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비겁이 재성을 본 것을 쟁재라 합니다. 쟁재의 해석을 간단히하면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이라는 경쟁에 가담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겁의 입장에서 재성을 보는 것은 더 큰 기회를 얻고자 무한경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재성의 입장에서는 이미 한정되고 제한되어진 빵가루에 한 무리의 개미떼가 먹고살기를 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공청소기로 다 빨아들여도 시원치가 않은 판돈이 뻔한 투전판에 가담하는 것은 비겁이고 판돈은 재성입니다.
비겁의 레이스는 판돈이 뻔한 투전판에 다가서 끝까지 함께 동거동락하는데 있습니다. 재성의 레이스는 처음에는 새로움으로 현혹하여 몸과 마음을 머물게 하고 나중에는 안주하여 타성에 젖거나 중독되어 벗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비겁은 두 가지 상생으로 그만의 권능한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편을 구분하면 지리멸렬해지니 간단히 인성의 생으로 나름대로 내적인 실력을 쌓아 쟁재라는 경쟁에 참여하고 식상을 생하여 외적인 경험을 쌓아 가기도 합니다.
비겁이 인성의 생을 받아 쟁재하면 지적재산권을 행사하는 경쟁가담과 같다면 식상을 생하는 쟁재는 인형눈 깔을 똑같은 시간에 누가 더 많이 다는 능숙함으로 경쟁에 가담하는 것과 같으니 투전판에는 고수와 하수도 있다 합니다.
투전판에 얼굴 마주하고 식상으로 포커페이스 레이스하는 것이나 주식시장에 지혜(잔꾀)로 작전싸움하는 비겁이 다름이나 정인이 생했다면 집 담보로 덤빌 것이고, 편인이 생했다면 일가친척 사돈에 팔촌 돈을 끌여들이기도 합니다.
물론 비겁의 인성이 生인지 泄인지에 따라 해석의 편차는 있으나 여튼 그렇다치고 또한 비겁이 식신을 생하면 능숙함이나 노련함으로 포기하지 않아야 승부가 나고 상관을 생하면 너를 살리고 내가 사는 것이 승부수이기도 합니다.
비견의 쟁재는 너와 경쟁보다 나와의 싸움과 같아 스스로 하는 극기훈련과 같다면 겁재의 쟁재는 나와의 싸움보다는 한심하나 혹시나 너가 어떻게 하는지나 한번 두고지켜 보자는 식으로 함께하며 나름대로 역시나 하기도 합니다.
쟁재는 마치 문방구는 학용품을 파는 곳이라 간단히 얕잡아 보는 것도 쟁재이고, 문방구를 경영하며 3천 가지가 넘는 바코드 품목을 컴퓨터에 입출고하며 재고와 빠진 품목을 감각적으로 알고 있는 것도 쟁재이니 레이스만 다름입니다.
또한 이러한 비겁의 자질은 관살의 극을 받아 제외되거나 소외당하기도 하고, 검증되어 현실을 자각하고 분수에 맞는 포지션을 찾아 가기도 하고, 겁재는 상하로 서열을 세운다면 비견은 좌우 횡으로 세력에 줄을 서기도 합니다.
쟁재하는 재성또한 식상생재가 우선하면 개개인의 일한 능력만큼 돈벌이 하는 경쟁속에 있다면 재생관이 우선하면 전체적인 팀웍에서 땀흘려 일한 댓가로 돈벌이를 하니 실적경쟁을 통하여 더 벌고 덜 벌기도 안벌기도 합니다.
이러한 비겁의 쟁재는 거시적인 관점의 레이스는 항상 경쟁이 따르니 이길 수 있다 자만하거나 무모하지 않아야 합니다. 재성의 쟁재는 독과점이 될 수 없으니 공유하고 나누어야 하니 미시적인 관점에서 레이스는 패턴이 다를 뿐입니다.
비겁은 상극되는 재관을 만나며 경쟁관계에서 누가 더 가지고 누가 덜 가지고가 결정되는 무대와 같다면, 상생하는 인식으로 개인적인 자질검증을 거친 만큼 이 사회속에 돈 놓고 돈먹기 게임에서 경쟁력을 갖추어지기도 합니다.
신왕한 비겁의 쟁재는 경쟁에 가담할 수 있는 일가친척이나 단체라는 배경은 있으나 스스로 쪽팔릴 수 없는 양심에 죽어도 아쉬운 소리를 하지 못하니 보다못한 주변 배경이 자처해서 힘이 되어주니 기본을 지켜가는 조건과 같습니다.
신약한 비겁의 쟁재라는 것이 말은 되지 않으나 굳이 애써 해석한다면 주변에 스스로 앞가림하지 못하는 이들을 대신해서 두 팔을 걷어 붙이고 대신하거나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인권을 지켜주고자는 것과 같습니다.
쟁재하여 무관한 것이 대부분의 보통사람이고 범인의 삶으로 우리네 이웃인데 경쟁사회에서 꼬갑고 아니꼽지만 처자식을 위해 벌어먹고 살고자 평범하게 성질 죽이고 세상에 적응되어 살고자 애쓰는 것이 우리의 가장의 모습입니다.
팔자에 쟁재는 있어도 하고 없어도 합니다. 있어서 하는 것은 늘 그와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나 벗어 날 수 없음이 운명이고, 없어서 하는 것은 남들이 그래 사니까 나도 이래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경각심과도 같습니다.
쟁재가 있든 없든 보고 듣고 아는 것이 많은 세상이라 오히려 쟁재이고, 지식과 정보의 호수로 인하여 앎이라는 지혜를 인하여 진실로 나 다운 것이 무엇인지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도 쟁재이니 순박하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출처 : 쟁재에 대하여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