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에 대해서 고민해 보자.
사람이 살아가는데 의식주는 반듯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집이라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한까지 서려있다.
내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지
어쨋든 내집을 가지려는 소유욕은 대단들 하신것 같다.
집 / 주거와 한국인 또한 서울에 사는 서민들의 열망은
작은 집이라도 가지고 싶은 열망은 이해를 해야 한다.
어찌 되었든 주거에 대해 몇마디 쓰고 퇴근할려고 화두를 잡아봤다.
약속된 시간은 이미 다 되었는데 몇자나 쓸지 걱정도 스럽다.
그렇다고 오늘도 몇글자 안남기면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하다고
쪽지까지 날라오니 흔적이라도 남기려는 안간힘인지도 모른다.
월지는 주거지역으로 볼때 잘 맞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내가 머문곳인 모양이다.
정인격은 주변에 학교가 가깝다.
운로에 정인운로에는 학교에 가깝게 이사를 하는 것을 많이 본다.
편인격은 주변에 교회나 절이 가까운 모양이다.
운로에 편인운로에는 교회나 절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는 것을 많이 본다.
재격은 시장이 가까운곳에 산다.
이런식으로 격에 따른 주거적인 위치가 어느정도 포지션이 정해지는 것을 많이 본다.
각각 10격에 따른 주거적인 형태는 이미 예전에 한번 쓴기억이 난다.
이것을 다시 리바이블 하려는 것은 아니다.
격에 따른 주거적 성향에 육신을 첨가하고 오행을 첨가하면 똑 떨어지는 말을 할 수 있다.
격으로의 주거적 형태는 신약한 경우는 잘 맞지만 신왕한 경우는 안맞을 경우가 있고,
또한 정인격이라 해도 정재가 있으면 맞지 않는 주거형태가 나오니 이를 보완하고자 한다.
가령 육신으로 주거를 볼때
내가 사는 집을 과연 무엇으로 봐야 하는지 묻고 싶다.
인성이 일간을 생한 것을 내집으로 해야 할지,
아니면 관성이 인성을 생한 것을 내집으로 해야 할지,
그때 그때 다른 의미이기는 한데 일단 기준점을 잡기 위한 육신활용은 필요하다.
일단 집은 재극인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어떤가 싶다.
재라는 것은 현실에 살아가는 내모습이고,
인이라는 것은 정신으로 살아가는 내모습인데,
재인의 균형이 인왕재약하면 현실에 부합되는 집으로 정착하려 할 것이다.
이들은 대개 집을 수리하고 불편한 집을 개선하려는 의지일 것이다.
재왕인약하면 정착하여 유지하려 할 것이나 현실적인 편이로움이 주는
정신적 부담감으로 마음에 안정이 요구되는 의지일 것이다.
재와 인은 재라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는 편의시설을 누리는 것이고,
인성이라는 것은 다소 낡고 소모되어 개선이 필요한 관점이라고 하자.
한국사람에게 주거는 관과 상응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재생관은 세상 사람들이 선호하는 주거를 지니고 사니 부러움에 대상이다.
재생관은 안정을 위하여 열심히 과중과로 노력하여 내집마련의 꿈을 실천하고자 한다.
쟁재하면 내집을 가지고자 하나 결국 남의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이고,
재생관하여 비겁을 제하는 사람은 내집을 남에게 세를 주는 사람의 입장이다.
그러면 신왕재생관이 관이 비겁을 제하면 내집을 가지고 살수 있을 것이다.
집을 가지고 못가지고를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거적인 형태를 말하는 것이니
이런 논제보다는 재생관하면 주상복합건물에 산다고 해두자.
재생관하면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인기주택에 사는 사람이니 이것은 아파트일 것이다.
아파트인지 요즘 최근추세가 주상복합이 더 인기가 있으면 그것이 재생관일 것이다.
아파트도 재생관이 잘되면 삼성레미안 아파트에 산다고 하면
재생관이 불미하면 다소 비메이커 대동아파트든지, 거시기 별로 유명하지 않는 아파트라고 하자.
관인상생하면 이것은 분양받은 집이든지, 부모한데 물려받은 집이든지,
현대가 아파트를 처음 짓기 시작했고 가장 많은 아파트를 졌다면 현대아파트라고 할수도 있겠다.
하여간 재생관이든 관인상생이든 이런 형태로 사회중심적으로 얼마나 평범한 주거적
형태를 띠고 사는 것인가를 살피고자 한다면 인성이 일간을 생하는 집도 그러하고.
일간이 식상을 생하는 것이나 식상을 재성을 생하는 집도 이와 같이 통변하면 어떤 주거를
하는지 알수 있을 것이다. 가령 식상생재는 먹고 살기위하여 잠시살고 있는 집이라 해두자.
일간이 식상을 생하는 집은 자식교육때문에 살고있는 집이라고 해두자.
인성이 일간을 생하는 집은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집이라고 해두자.
재생관하는 집은 일단 편의와 안정과 재산가치를 상승하기 위한 집이라고 해두자.
관인상생하는 집은 살다보면 부가가치가 상승되어지는 집이라고 해두자.
다시 그럼 상극으로 육신을 대입하면
재극인하면 재가 인성으로 가면 소모되고 낡아져가는 집이니 다시 변화가 필요할 것이고,
인성이 재성으로 가면 헌집이니 새집으로 가서 삐까번쩍 편이롭게 살려고 하는 집이다.
이와 상극으로 타 육신을 돌려보면
식정관하면 식이 관성으로 가면 적은 돈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고 있는 집에 산다는 것이고,
관성이 식상으로 가면 별장으로 여가를 보내려고 하는 집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식관의 주거적 형태는 물론 식신 상관 정관 편관을 나누어서 통변해야 겠지만 식관의 동정은
내가 휴식할 곳과 내가 업무용집과 구분을 해야 하는 주거적인 형태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분류하기로 하고
비재도 그러하고 살비도 그러하고 이런 형태에 따라 주거적인 형태가 다름이다.
집은 단지 인성으로 보고 재성으로 본다면 오류가 있을 것이다.
신왕하고 쟁재하는 사람은 내집을 세주고 남의집에 세든사람.
신약하고 쟁재하는 사람은 그냥 세든 사람이다.
신약하여 재생살하는 사람은 월세방에 사는 사람일 것이다.
에구..너무 급하게 썻더니..주거적 형태의 상황이 엉망이다.
하여간...이런것도 있다라는 것으로 소설보았다는 생각을 해주기 바란다.
주거적인 형태도 다양한 접근방법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어떠한 관점으로 주거를 생각하고 있느냐에 대한 논의로 고민해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