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는데 따르릉 전화가 왔다.
일진도 중요하지만 겁재격까지는 해야지 딸랑 세개만
써놓고 누구 약올리냐는 식으로 빚 독촉을 하듯 한다.
채무에 시달리는 것도 고달픈데 머리속에 있는 것도
채무인양 얼렁 쏟아 내겠습니다 대답하고야 말았다.
그분이 겁재격이었다.
나에게는 겁재월 겁재일이다.
역시나 일진 값을 한다.
겁재월에 들어서면서 반성하기를 나서지 말것이며
건방떨지 말것이며 척하지 말것이며 그들보다 못하다
여기고 얌전하고 고분고분하게 살아야지 했는데...
세상은 넓고 강호에 잘난 사람은 무수히 많으니 까불지말고
조신하게 있으면 중간은 유지하는데 나선 것이 화근이다.
알고도 깨지고 모르고도 깨지는 것이 운명이란 말인가!
뛰는 자에 나는 자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겁재격이다.
극신약 재다신약이 겁재만 봐도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하는데
하물며 겁재격은 어떠하겠는지 미루어 짐작해보면 알것이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에 심기가 불편했나 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는 것이고 도둑은 도적질을 하고 산다.
음양 오행이 다인줄 아는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그들이 최고이다.
격국과 용신이 다인줄 아는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그들이 최고이다.
인간사를 알지 못하고 어찌 음양 오행이 있고 격국과 용신이
있다 하는지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모두 그렇게 통하는 것인가 보다.
모두가 그렇게 통하는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진리가 있는양
예수님을 찬양하고 부처님께 빌고 빈다면 골빈 맹신자일 뿐인 것이다.
여하튼 하여간 겁재격.
앞서 위에 겁재에 대한 의미를 당구에 쓰리쿠션으로 돌려 말하긴
했는데 써달라는 위협을 받으니 스로우 모션으로 묘사해 보겠다.
인간사 자기 스스로 잘났다 여기며 착각하고 사는지 모른다.
주변사람에게 늘 양보하고 피해만 입고 하고 살았다고 한다.
양인격, 겁재월. 육신겁재, 모두 똑같은 말인데 殺이 있으면
분수를 알것인데 官殺이 없으면 기고만장할 것은 뻔한 것이다.
못난 입으로 시커먼 손으로 고운말 이쁜말을 해야 하는데
흉신격은 도대체 솜사탕같은 부드러운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남보다 높은 곳에 점유하려는 본능이 스스로를 고립무원시킨다.
이것을 낱말로 표현하면 우월감이라 하는 것이 적당한지 모르겠다.
어제 유덕화가 나오는 삼국지의 용의 부활을 보았다.
옛날 천장지구라는 영화로 감동을 주던 양반이 또 감동을 준다.
사나이 대장부는...
무리를 대표하는 무장은...
싸울때 정정 당당히 沖(빌충)을 외치며 선전포고를 한다.
적어도 잔꾀로 뒤통수를 치는 비굴한 면은 보이지 않는다.
겁재는 스스로 배신하지 않았고 얕은 꾀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관살이 읍으면 결국 비굴한 편인을 쓰고 있으면서도 그렇치 않다한다.
홍금보의 표정 연기, 나도 평생 소원이 관살을 쓰고 싶었다는 대사.
조자룡의 그늘에서 2인자로 늙어가며 결국 배신자의 캐릭터가 되었다.
겁재는 타인을 위해 살아가고 나보다 잘난자 못난자를 평생 위하고
살아가라 하는데 그도 사람인지라 이름 값을 꽤나 하고 싶었나 보다.
사나이의 의리와 배신 호형호제하는 상대를 짓밟고 내가 잘나려고
한다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 무미건조한 삶이 아닌가 싶다.
한참 쓰고 있는 중에 전화가 와서는 당신은 양인격이지 겁재격은 아니란다.
극신약이 우기면 모하리 겁재월이니 그들만의 리그에 부흥하고 살자.
양일간 자오묘유도 관살이 없으면 겁재격인데도 불구하고,
하물며 음일간 인신사해를 양인이라니 할말도 없고 우길 여력도 없다.
독립되어 주체성을 가지고 싶은 맴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낑겨살아야 하는 것이 운명이라고 하면 벼름박에 자해할까 조심스럽다.
겁재격이여 더불어 사는 덤인생이라 여기면 잘 살 것이다.
부디 그대는 잘나지도 말것이며 척도 하지 말고 살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