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생이라는 것은 대개 입동절기부터 입춘절기전까지를 말합니다. 음양으로 확대하면 추분절기부터 춘분절기전까지로 볼수도 있습니다. 겨울에 중심을 동지절기로 하여 이전은 한기가 응결되어지며 추위가 점점 깊어지는 시기가 되고 이후는 한기로 응결되어진 것이 점차 태동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음양을 기준으로 동지는 한해(年)가 변화되는 시점이고 生과 死의 갈림길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한해가 입춘을 기준으로 변화되는 것은 오행을 기준한 것입니다. 음기가 가장 무성한 동지는 밤시간이 길고 양기가 가장 무성한 하지는 낮시간의 길이가 긴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합니다.
밤이 깊어가고 있는 것과 밤이 깊어지면 질 수록 여명이 떠오르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이것을 절기로 동지를 기준으로 한기가 응결되어 세상 모든 것이 동면하고 휴식하여 하루로 따지면 잠을 자는 시간과도 같으니 어두운 세상에는 눈은 필요가 없고 귀만 필요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려면 우선시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니 겨울생은 대개 청각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어두운 밤에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도 들리고 홀시어머니는 신혼부부의 사랑에 몸이 달은 소리도 선명하게 들려지니 헛기침 하는 소리가 벼락소리처럼 들려지기도 합니다.
여름생은 백주대낮에 날이 더워 나시티 입고 핫팬츠 입은 예쁜 젊은이들 보라고 눈은 밝기도 하니 나이가 환갑이 넘고 칠순이 되어도 생기발랄한 교복을 입어 싶어하고 가슴팍 패인옷에 미니스커트도 소화할 수 있다 노익장을 과시하니 주책이 바가지라 백마디 말을 들어도 한번 보여주는 것으로 답하기도 합니다.
子月 동지섣달 찬바람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고요한 적막속에 바람소리,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잘 들리고 건대에 김병우라는 사람이 담배 뻐끔거리는 소리는 들려도 담배연기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은 보이지 않으니 밤이 주는 매력은 그져 조용하고 평온하고 새근새근 코고는 소리만 들릴뿐입니다.
동지 이전에는 세상천지가 얼어서 고정되고 멈추어 냉동시켜야 하는데는 金의 기운이 필요하다 해서 금생수를 말하기도 하는데 金은 水를 생하는지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튼 겨울에 금이 더해져야 눈보라 치고 서릿발같은 냉기가 냉장고에서 흘러나오듯하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동지 이전에는 그래서 죽을 것은 다 죽고, 실한것, 쓸만한 것만 동지 이후를 기약하라는 신호와 같습니다. 겨울에 날이 춥지 않으면 장차 봄여름이 되어 병충해가 극심해지니 겨울에는 세상천지가 꽝꽝 얼어 붙어 추워야 꼭 살것만 살고 쓸데없는 것은 다 죽어 소멸되니 겨울은 겨울다워야 합니다.
동지절기 이전에 금은 더욱 실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니 사람은 그져 추위에 지치고 피곤하여 지쳐 쓰러야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한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불면증이라 하는 분도 계신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병장을 돌고 통나무 들고 뛰다보면 저녁먹고 초저녁이면 저세상으로 잘 갈 수 있습니다.
고로 동지 이전에는 죽어야 사는 이치가 되고 동지 이후에는 살기위해 죽은 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눈과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몸과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가 아는 상식으로 대입하려는 지혜의 확장성을 동결하고는 열린사고라 하니 삼천배를 행하지 않고는 몸과 마음이 다름을 알지 못하나 봅니다.
동지 이전에 부실한 것은 부실한대로 갈 사람은 가라는 것이고, 조용히 눈감고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과 조용이 눈감고 아침을 맞이할 것이 金木인 주체가 火土의 객체로 하여금 결정지기도 하는데 겨울생이 조용히 살아야 하는 것은 동면하고 휴식하라는 때에 태어났으니 그것이 인간사속에 역활이기도 합니다.
동지 이후는 코마상태에 이르렀으니 금기를 우선시하기 보다는 목기로 내일을 기약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이웃하여 고초속에 일어나 엄마의 젖가슴에서 수유를 받고 해가 떠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하는 아이처럼 순박한 이들이 있고 인생 막장에 노인네분도 있으니 이것이 동지절기가 기준합니다.
여튼 겨울생은 겨울생답게 조용히 수신제가하고 치국평천하하는 것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은 첫째 火의 기세가 월령을 능가할 경우인데 겨울생이 여름생처럼 열정을 다하니 주변은 어두워 고요하기만 한데 나홀로 후렛쉬 불켜고 전등불 켜고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곳을 서성이기도 합니다.
물론 한밤중에도 남대문 시장분들은 해가 지지 않고 일하며 살고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이나 식당도 있으나 이러한 건강함은 월령을 능가하지 않았을때를 말하고 능가하면 날이 저물어 잠잘때가 되었는데 혼자만 낮처럼 움직이니 이 분들은 세상이 환경이 내 뜻을 받아주지 않아 넘어지니 이를 실패라 하나 봅니다.
월령의 심천을 알고자 하면 우선시 24절기를 숙지해야 하고 절기를 숙지하면서는 절기마다 5일씩 나누어 72절후의 깊어지고 얕아지는 이치로 하여금 우선 음양을 전제하고 차선으로 목화금수와 토의 배합으로 용법과 사는 이치의 기준은 오로지 월령에 있으니 자평에서 월령용사 전구용신이라는 말을 하나 봅니다.
오행에서 목이 동지이전에도 인덕이냐고 한다면 고개를 갸웃거리고 싶습니다. 그 목은 목생화를 하는 용도일수도 수생목을 하는 용도일수도 있으니 한 겨울에 나무가 물을 빨아 먹는 다는 소리는 들어 본적이 없어 목생수라고 해서 나무가지와 줄기의 수분을 빼서 뿌리로 내리는 작용이라면 이해는 합니다.
이것을 사람으로 따지면 나이가 들어 궁물은 쏙빠지고 건더기만 남는 분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은 분으로 앙상한 뼈와 거죽만 남게되고 나무줄기와 가지는 수분이 다 빠져 툭건들이면 톡 뿌러지기도 하고, 쌓아둔 땟감은 겨울 찬바람에 수분이 쏙 빠져 잘 타는 땔감이 되기도 합니다.
동지에 수가 목을 본것은 이해하는데 수생목이라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으니 生이라는 말은 생략하겠습니다. 하물며 목생화는 겨울 나무에 눈꽃이 피는 것은 보기는 했는데 매화도 그 시절에 개화되는 것은 돌연변이가 아니고서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겨울에 나무가 화를 생한다는 이치도 쉽지 않은 말입니다.
겨울 나무에 눈꽃은 일장춘몽과 같아 한 낮에 머무는 태양빛에도 녹아 버리니 그가 아무리 유명하다 해도 무대에서 잠시 머물다 떠나는 가수에 불과하지 않나 싶습니다. 겨울나무는 목생화하기 보다는 이도 화생목으로 화의 은혜로운 보살핌에 내가 죽지 않고 존재하는 이유이니 은혜를 보답해야 합니다.
결국 겨울에 목화는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닝겔과 같다면 금은 응결을 도와 단단하고 야무지게 결속을 돕기도 합니다. 그러하면 토는 겨울생을 더욱 겨울생답게 하기도 하니 나설때와 물러설때를 알아 스스로 일어서고 앉고 눕기도 하며 세월을 자급자족하게 하기도 합니다.
겨울생이 토가 없다는 것은 나라는 주체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겨울이라는 수왕지절에 토가 없다는 것은 수도 없고 토도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토가 수가 없다는 것은 이도 나도 없고 너도 없는 것이니 좋게말하면 세상천지 뱃속 편한 사람일 수도 세상천지 거시기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동지 이전이든 이후든, 토라는 것은 내가 있고 너가 있어야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입니다. 이것을 인간사로 비유하자니 네가 있고 내가 있어 나는 살 수 있는거야라는 노랫말처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토속에 수가 스미는 것인지, 수가 토로 하여금 가두어 물잔이 된것인지 술잔이 된것인지는 모를 일입니다.
겨울에 토는 내가 있으니 네가 있다는 것입니다. 겨울에 토가 없으면 너가 있으니 내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일을 하며 네일을 돕는 것처럼 하는 이도 있지만 네일을 도우며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있으니 공기가 있어 네가 살수 있지만 너는 알 수 없고 나는 알것도 모를것도 같습니다.
땅이 있어 내가 발을 디디고 있으면서도 건대에 김병우는 감사하는 마음은 커녕 너무도 당연시하여 당당하게 밟고 다니며 미안한 마음이 들지가 않습니다. 공기가 너무도 흔해 산소가 없어 비닐봉다리를 쓴것인지 본드를 마시는 것인지 여튼 토라는 것에 대한 유무를 인간사로 비유하면 코미디수준입니다.
남녀간에 사랑이 난 너를 사랑해는 토가 있는 사람이고, 너를 사랑해 나는이라 하는 것은 토가 없는 이의 말입니다. 토가 있는 사람이 내가 너를 사랑해줄께 은총을 줄께하니 감동이고 토가 없는 사람이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거시기하다면 흔하디 흔한 말장난같고 감정노름같아 우습게 보이기도 합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화차통을 삶아먹어 귀가 어두어 듣지 못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많이 봐서 눈이 어두어 보이지 않으니 억지춘양 말도 되지 않은 표현으로 정형화시켜가려는 것은 아닌지 글을 쓰는 내내 조심스럽기도 하고 말도 되지 않은 말로 그들만의 리그를 어지럽히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여간 저여간 겨울생은 이 시대속에 조용히 사는 것이 진리가 아닌가 엉뚱한 사고를 하여 보았습니다. 청하지 않는 것에 나서지 말며, 원하는 이가 있다면 바람처럼 물결처럼 딪고 건네게 하는 디딤돌이 되어주고, 묻고자 하는 것에 답하고, 모든 이들에게 근본이되어 귀감이 되는 삶이 되어야하지 않아 싶습니다.
표현하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은 서울 하늘에 소낙비처럼 많으나 겨울생은 겨울생답게 살아야 되는 것을 알기에 그들만의 리그에 질서를 존경하기에 가을생은 배가 고파도 밥은 먹은 듯이 살아야 하고, 알아도 모르는척 몰라도 모르는척 그들만의 리그에 질서를 존중하는 삶이 되어야 아름다운 세상이라 생각합니다.
출처 : 겨울생이 산다는 것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