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론(干支論)
사생지(四生地)
사생지(四生地)를 사생지지(四生之地) 혹은 생방(生方)이라고도 표현한다.
목기(木氣)는 생해녹인(生亥祿寅)하니 亥月이 생지(生地)며, 화토기(火土氣)는 생인녹사(生寅祿巳)하니, 寅月이 生地가 되고, 金氣는 생사녹신(生巳祿申)하니, 巳月이 生地이고, 수기(水氣)는 생신녹해(生申祿亥)하니 申月이 生地가 된다.
따라서 사생지(四生地)라 함은 寅,申,巳,亥를 일컫는다.
사생지(四生地)는 각 오행(五行)의 건록(建祿) 위치(位置)이기도 하므로 사록지(四祿地)가 되고, 또 사병지(四病地), 사절지(四絶地)이기도 하다.
사생지(四生地)는 생방파동(生方怕動)이라 한다.
직역(直譯)을 하면 생방(生方)은 동(動)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의미이다.
즉 생방(生方)은 사생지(四生地)를 뜻하니 寅申巳亥는 동(動)함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동(動)한다는 의미는 충(冲)을 하거나 충(冲)을 당한다는 의미이다.
寅申巳亥 사생지(四生地)는 정(靜)함을 좋아하고 동(動)함을 두려워하니 충(冲)을 두려워한다.
각 오행(五行)의 생지(生地)라 함은 장생지(長生地)로서 기(氣)가 진(進)함을 의미한다. 이승기행개유상(理承氣行豈有常) 진혜퇴혜의억양(進兮退兮宜抑揚)이라 한다.
기(氣)를 이어받아 이치(理致)가 흐르는데, 어찌 항상 같을 수가 있겠는가? 나아가고(進) 물러남(退)에 따라 마땅히 억제(抑制)하고 도와주어야 한다(生助). 는 의미이다.
이는 기(氣)의 진퇴(進退)를 정확히 알아야 생(生)과 극(剋)을 논할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필당심명리기지진퇴(必當審明理氣之進退) 서득쇠왕지진기(庶得衰旺之眞氣)라 한다.
기(氣)의 이치(理致)가 전진(前進)하고 물러남을 명확히 분석하여 반드시 살펴야 되며, 그렇게 하고나면 자연히 진기(眞氣)의 쇠왕(衰旺)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의미다.
기(氣)의 진(進)이라 함은 왕(旺)과 상(相)을 의미하며, 퇴(退)라 함은 휴(休)와 수(囚)를 말한다.
왕(旺)은 당령(當令)을 만남이고 상(相)은 生을 받는 것이고, 휴(休)라 함은 生을 하는 것이며 수(囚)는 剋을 하는 것을 뜻한다.
이 왕상휴수(旺相休囚)는 사계절(四季節)의 변화에 따라 결정되게 되며 자연현상(自然現象)으로서 질서정연(秩序整然)한 것이 특징이다.
사생지(四生地)에서 生을 받았다는 것은 앞으로 기(氣)가 진(進)하는 것이니 상(相)이 된다. 甲木으로 예를 들어보자.
甲木은 亥月에 生 하니 水生木이 된다.
따라서 亥月은 生을 받는 것이니 상(相)이 되며 기(氣)가 진(進)하는 것이다.
초겨울인 亥月에서 生을 받은 甲木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봄으로 진행한다.
기(氣)가 진(進)하는 것이다.
진(進)하여 초봄인 寅月을 맞게 된다.
寅月은 당령(當令)이다.
목왕지절(木旺之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춘절(春節)은 왕(旺)이 된다.
왕(旺)하였다 함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함이 된다.
이를 공성자(功成者)라 표현한다.
공(功)을 모두 이루었다는 뜻이다.
공성자(功成者)는 퇴(退)하게 된다.
즉 물러나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理致)인 것이다.
계절(季節)의 변화로 여름으로 진행한다.
기(氣)가 퇴(退)하는 것이다.
초여름의 巳月을 맞으면 휴(休)가 된다.
木生火로 화기(火氣)를 生하는 것이다.
寅月에서 巳月은 퇴기(退期)가 된다.
기(氣)가 다시 퇴(退)한다.
가을철로 진행은 되지만 중간의 土氣의 조절(調節)을 받게 되니 사계(四季)의 토기(土氣)로 퇴(退)한다.
토기(土氣)는 수(囚)가 된다.
木剋土하기 때문이다.
다른 오행(五行)도 이와 동일한 이치(理致)이다.
日主와 희용신(喜用神)은 기(氣)가 진(進)하는 왕상(旺相)이 되어야 되고, 기신(忌神)과 흉살(凶殺)은 기(氣)가 퇴(退)하는 휴수(休囚)가 되어야 함은 당연한 이치(理致)가 된다.
이와 반대의 현상이 된다면 흉(凶)한 사주가 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꼭 알아야 될 점은 왕(旺)보다는 상(相)이 더 바람직하다.
그 이유는 왕(旺)은 곧바로 퇴(退)의 길로 진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며, 상(相)은 장생(長生)이니 왕(旺)으로 진(進)하기 때문에 기(氣)의 흐름이 막히지 않기 때문이다.
역시 휴(休)보다는 수(囚)가 바람직한 것은 동일한 이치(理致)가 된다.
생방파동(生方怕動)이니 생방(生方) 즉 寅申巳亥는 충(冲)함을 두려워 한다고 했다.
충(冲)이라 함은 寅과 申이며, 巳와 亥이다.
일부에서는 寅申 冲이 金剋木이고 巳亥 冲이 水剋火이므로 金水는 木火를 冲할 수 있으나, 木火는 金水를 冲할 수 없다고 알고 있는 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천간(天干)의 冲에 대한 것이며, 그 또한 木火도 金水를 冲할 수가 있는바, 마찬가지로 지지(地支)에서 木火도 金水를 冲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천극지충(天剋地冲)이니, 천간(天干)의 경우는 극(剋)과 같으므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지(地支)는 기(氣)의 진퇴(進退)가 변수로 작용한다.
또한 다른 장간(藏干)이 천간(天干)에 투출(透出)하여 득세(得勢)하고 있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장간(藏干)도 변수가 된다.
천간(天干)의 경우는 각각 단일한 오행(五行)으로 작용하지만 지지(地支)는 장간(藏干)을 여러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기(氣)의 진퇴(進退)를 놓고 판단할 때를 살펴보자.
월령(月令)이 춘절(春節), 즉 寅卯月인 경우에 金을 용(用)한다고 생각해 보자.
金은 기(氣)가 퇴기(退期)로서 득기(得氣)한 寅의 경우, 申을 冲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金剋木으로 申冲寅이 되나, 결과는 쇠자(衰者)인 申이 더 피상(被傷)된다고 봐야 되기 때문이다.
巳亥 冲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다음으로 기(氣)의 강약(强弱)이 동일한 상황으로서 寅과 申이 같은 기세(氣勢)라면 寅은 申을 冲할 수 없는 것일까? 寅의 장간(藏干)은 甲丙戊이다.
申의 장간(藏干)은 庚壬戊이다.
寅申 冲이 발생하여 동(動)하게 되면 먼저 申中 庚金이 寅中 甲木을 金剋木으로 剋한다.
그다음 寅中 丙火는 申中 庚金을 火剋金으로 剋하고 다시 申中 壬水는 寅中 丙火를 水剋火로 剋한다.
다시 寅中 戊土는 申中 壬水를 土剋水로 剋하는 상황이 되므로 번갯불이 튀듯이 동(動)하며 상전(相戰)이 되게 된다.
따라서 木火가 金水를 冲하지 않는다는 말을 지지(地支)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천간(天干)에서 극(剋)이 중요하듯이 지지(地支)에서는 冲이 중(重)하다.
형(刑)이나 파(破), 해(害)는 冲에 비해 대세(大勢)를 변하게 할 정도의 영향력(影響力)은 없는 것으로 봐야 된다.
하지만 충(冲)은 중(重)하다.
그 이유는 생극제화(生剋制化)가 최우선(最優先)이기 때문이다.
충(冲)은 생극제화(生剋制化)에 순(順)하여 영향력을 키우기 때문에 중(重)한 것이며 형파해(刑破害)는 상생(相生)으로 해구(解求)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신지이충위중(支神只以冲爲重) 형여천혜동부동(刑與穿兮動不動)이라 한다.
지지(地支)에 있어서는 다만 冲이 중(重)하며 형(刑)과 천(穿)등은 동(動)하기도 하고 동(動)하지 않기도 하다는 뜻이다.
즉 지지(地支)에서 冲은 중(重)하게 발생한다는 의미이며, 형(刑)과 천(穿) 등이라 함은 형파해(刑破害)를 의미한다.
이들 형파해(刑破害)는 동(動)하는 것이니 발생할 때가 있고, 부동(不動)이니 발생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형여천혜동부동(刑與穿兮動不動)이라는 말은 명나라 초기(1311-1375년) 학자인 유기(유백온) 선생이 지은 “적천수(滴天髓)”에 나오는 말이다.
그 후 500여년 뒤인 청나라 초기 임철조 선생이 주석을 달았으며 지금부터 약 100여년전인 1900년대에 서락오 선생이 이를 편집하면서 “적천수징의” 라 하였다.
하여튼 이 “적천수”는 명리학의 기본서(基本書)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책이며 임철조, 서락오 선생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주석서(註釋書)가 있다.
“적천수(滴天髓)”라는 책이 워낙 간결하고 함축적인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초학자들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당대의 유명한 명리학자들의 주석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주석서(註釋書)들의 내용이 서로 다른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또 “적천수” 원문의 내용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부분도 상당히 있다.
하지만 임철조, 서락오 선생 등은 명리학의 대가(大家)로서 후학자들의 존중을 받아 마땅하신 분들이다.
그분들의 이론을 연구하면서 명리학을 배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한 대가(大家)들의 이론적인 차이점이 문제가 된다.
어느 분의 이론을 따라야 될지가 중요하게 대두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것은 향후 여러분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기도 할 것이다.
현재 국내에 이름있는 학자분들 중에도 추종하는 주석서(註釋書)에 따라 각각 주장하는 이론이 다른 것이 현실이다.
“적천수” 원문에는 형여천혜동부동(刑與穿兮動不動)이라 되어 있지만 시중에 있는 적천수를 강해(講解)한 서적들 중에는 이 내용을 “형파해(刑破害)”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있다.
물론 원문의 내용을 존중하여 동(動)하기도 하고 부동(不動)하기도 한다. 라고 해석되어 있는 책도 있다.
주석서(註釋書)라는 특징 때문에 이에 대한 불만은 있을 수가 없다.
저자(著者)의 주관이 중요한 서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필자는 초학자들께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석되어 있는 내용과 원문(原文)을 같이 비교해서 공부하기를 바라며 가능하면 원문(原文) 위주로 공부하시는 것이 나중에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오류를 범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을 주지시켜 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위의 내용 외에도 많은 부분에 서로 다른 해석이 되어 있음을 반드시 참고하시기 바란다.
출처 : 명리세상 - blog.daum.net/gbell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