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살(挑花殺)
명심보감에 이런 구절이 있다.'사람은 백년을 살지 못하는데, 공연히 천년의 계획을 세운다.'
(人無百歲人 枉作千年計). 유한한 인생에서 아쉬움이 없는 때가 있으랴마는 봄은 특유한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설레이게 한다. 지루한 겨울의 끝에 찾아오는 따사로움과 산하에
만발하는 봄꽃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삶의 욕구로 가득 채운다. 그러나 인생과 봄날은 즐기기에는
너무나 짧다.
시선(詩仙) 이백도 복사꽃 우거진 동산에서 쓴 ' 춘야연도이원서'(春夜宴桃梨園序)란 글에서
"부질없는 인생이 꿈과 같으니 즐거움이 그 얼마이던가?"라고 읊었다.
명리학에서는 남녀관계를 복숭아에 비겨 도화살이라 칭한다. 명리의 고전 금오결(金烏訣)에
의하면, 도화는 각가 희기에 따라 양지도화(兩枝挑花), 쌍도화, 절삽(折揷)도화, 양인(羊刃)도화,
홍염(紅艶)도화, 태공(太公)도화, 대살(帶殺)도화, 석불(石佛)도화, 세류(細柳)도화,
화중(畵中)도화, 패옥(佩玉)도화 탈진(奪眞)도화 등 12가지로 분류된다.
양지도화는 의미 그대로 양 가지에 핀 복사꽃으로, 자칫하면 쌍도화와 혼동하기 쉽다.
차이점이라면 양지도화는 두 집 살림을 하기 일쑤고, 쌍도화는 삼각관계에 놓이기가 쉽다.
절삽도화는 꺽어다 꽂은 도화다. 복사꽃은 열흘을 피어있기가 힘든데 꺾어다 꽂으면 더욱 쉽게
시드는 것이 자명하다. 그러므로 절삽도화는 순각적으로 만났다가 헤어지는 남녀사이 같은
것이다.
양인도화는 난봉꾼이다. 남녀관계가 문란하며, 남의 남편을 가로채고도 수치심을 모른다.
홍염도화는 탐스러운 미모의 도화다. 아름다움을 마음껏 발산해, 보는 이로 하여금 취하게
만든다.
굳이 예를 들자면 모델이나 미스 코리아에게서 많다.
태공도화는 위수(渭水)에서 문왕을 기다리며, 80년을 낚시질로 보낸 강태공의 고사로부터 비롯된
이름이다. 태공도화는 단발머리 소녀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상대방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대살도화는 살(殺)을 끼고 있는 도화다. 살을 끼고 있으니 가까이 하면 사람이 상하기 마련이다.
어느 국회의원의 가슴에서 금배지를 떼어낸 것이 바로 이 대살도화였다.
석불도화가 있는 사람은 남녀를 막론하고 돌미륵처럼 건장한 상대를 좋아한다. 반면에 세류도화가
있는 사람은 버드나무 가지처럼 매끈하고 가는 사람을 좋아한다.
화중도화는 화중지병(畵中之餠)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런 사람은 상대자가 TV나 그림 속의
주인공처럼 잡을 수 없는 사람이기 쉽다. 패옥도화는 구슬을 허리에 찼다는 말인데, 여자로 인해
부귀를 얻거나 처덕으로 재물이 생기는 경우다.
탈진도화는 고약한 도화다. 상대의 진기를 다 빼앗고 결국은 패가망신에 이르게 한다.
그런데 왜 선학들은 남녀관계를 많은 꽃중에 하필 도화에 비겼을까?
그것은 첫째 복숭아라는 과일에서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복숭아의 표면에는 까끌까글한 털이
있어서 피부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도화가 의미하는 것이 대부분 정상적인 남녀관계가 아닌
것을 볼 때, 복숭아 알레르기를 남녀관계에 비겼음을 알 수 있다.
둘째는 복사꽃의 색깔이다. 봄날 만발한 복사꽃은 분홍의 자태를 뽐낸다. 지금도 사람들이 연애의
색조를 흔히 '핑크빛'에 비기 듯, 복사꽃은 핑크빛 분위기를 상징한다.
셋째는 복사꽃의 부질없음이다. 복사꽃운 봄날의 어느 한 때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지만 미처
열흘을 지나지 못한다. 빼어난 자태에 감탄하고 있자면 어느새 낙화로 분분히 흩날리며, 청춘의 한
순간처럼 숨돌릴 틈없이 사그러진다.
아마도 복사꽃의 이런 성질과 불장난같은 남녀의 연애가 갖는 공통점이 도화살이란 의미를
탄생시켰을 것이다. 그래서 절개를 중요시하던 옛 선비들은 도화의 아름다움을 알면서도
송죽(松竹)의 기상보다는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풍류라면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을 방랑시인
김삿갓은 도화의 부질없음을 이렇게 말했다.
'복사꽃과 배꽃은 한 때의 봄날이지만, 푸른 송죽은 만고의 절개로구나'
(紅桃白梨一年春 靑松綠竹萬古節).
노석 류충엽
출처 : 도화살(挑花殺) - cafe.daum.net/dur6f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