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합 무용론(宮合無用論)
세월이 화살같다. 찜통 더위도 가고 아침 저녁으로 가을 기운이 완연하다.
가을이 되면 궁합을 보러 오는 사람이 늘어난다. 인륜의 대사라고 일컬어지는
결혼에 대한 불안감, 과연 자신의 결혼생활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의 의문...
이런 심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궁합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것 같다.
학문적 견지에서 궁합이란 남녀 한 쌍의 사주원국에서 재,관,인,식의 희기,
운로의 순역을 따지는 일이다. 이러한 원칙들이 비슷한 경우를 좋은 궁합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궁합이란 대단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남이(南怡) 장군에 관한 일화는 좋은 궁합의 일례를 보여준다. 어느날 남이는
홍시를 먹고서 죽어가는 권람의 딸을 구한 인연으로 혼담이 오가게 되었다.
권람은 장안의 이름난 술객 홍계관에게 궁합을 물었다.
홍계관은 남이의 사주를 평하기를 '25세에 병조판서에 오를 것이요, 28세면 죽을
것이지만, 권람의 딸은 그보다 더 단명하고, 후사도 없을 터이니 천생배필'이라고
했다. 과연 권람의 딸은 남이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고 남이도 역시 28세에 모함을
받아 죽고 말았다.
명리의 금언(禁言)에 '연불언(緣不言 - 남녀의 인연을 말하지 말라)이라는 것이
있다. 궁합의 시비를 논함으로써 남녀의 인연을 끊어버리거나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본래 궁합은 서로를 대면하기 전에 보는 것이지, 인연이 맺어진 뒤에 보는 것은
아니다. 서로 미래를 약속하고 결혼을 앞둔 시점에서 궁합을 본다는 것은 배우자에
관한 결례일 뿐이다. 게다가 궁합이 맞지 않으면 결혼을 재고해 보겠다는 속셈이
깔려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선학들이 연불언을 말한 것은 남녀의 인연이 당순히 세속적 계산으로만 가늠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명리의 고전 「적천수」에는 이것을 '부처인연숙세래(夫妻因緣宿世來)란 구절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숙(宿)은 숙명이란 뜻으로 남녀의 인연은 본래 숙명적이란
의미이다. 실제로 부부의 사주를 놓고 비교해 보면 부부의 인연이 과연 숙명적임을
느낀다. 남편의 희기가 부인의 사주에서 나타나고, 부인의 희기 역시 남편의
사주에서 발견된다.
남편의 건강이 위험한 시기에 부인의 사주원국에서 남편운은 악운으로 접어든다.
이런 사실은 부부란 인생의 행로가 일치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반증해 준다.
주역의 세계관에 심취햇던 17세기 독일의 철학자요, 수학자인 라이프니쯔는
'예정 조화설"이라는 학설을 내 놓았었다. 이 학설의 골자는 독립된 관현악단이나
합창단이 저마다의 악보를 연주하지만 지휘자에 의해서 조화를 이루고 있듯이
각각의 단자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도 각각이 지닌 법칙에 의해서 보이지 않는
힘으로 조화되고 있다는 이론이다.
"예정 조화설"로 부부의 인연을 바라본다면 좀더 파악하기가 쉬워진다. 처음에는
우연적일 수 밖에 없는 남녀의 만남은 운명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결혼이란 인연을 맺게 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바르지 않고서 올바른 상대를 구하고자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하늘은 늘상 조화를 이루려고 하기에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게 한다.
탕남(蕩男)은 탕녀(蕩女)와 만나고ㅡ 과부가 될 여자는 단명할 사람과 만나며,
고아한 선비는 요조숙녀와 만난다.
궁합을 보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세속의 안락함을 구하려는 인간의 간교한
잔꾀에 불과하다. 인간의 잔꾀로 천도(天道)의 법칙을 막는 것은 역부족이다.
세사(世事)의 어지러움으로부터 떠난 어떤 사람은 인간의 잔꾀를 이렇게 탄식했다.
'만사분이정 부생공자망'9萬事分已定 浮生空自忙 - 모든 일의 분수는 이미 정해져
있는데, 덧없는 인생들은 공연히 서둘기만 하는구나.)
노석 류충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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