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역학에 운명을 묻다] 박문현의 주역론
사주, 관상, 풍수지리, 성명학, 육효 등이 있는데 세간에서는 흔히 점을 본다는 말로 역술을 표현한다. 점을 치는 역술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신을 모시는 사람이 보는 신점이고 다른 하나는 태어난 시간을 풀어서 본다는 사주다. 사주란 명리학이라고도 하는데 태어난 연, 월, 일, 시를 천간과 지지로 변환시키고 천간과 지지가 나타내는 음양과 오행의 상태를 해석함으로써 그 사람의 성격, 건강, 재물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지금 성행하는 역술이란 주역을 중심으로 점을 치는 주역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체로 사주를 풀이하는 명리학이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오늘의 역술은 다만 점술일 뿐 주역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철학관'에 주역이란 철학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왜 역술이란 말이 생겼을까. 이것은 주역이라는 책이 원래 점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역은 원래 미래를 알고 일의 기미를 알아 미리 대처하기 위한 점서로서 지어졌는데 공자가 십익(十翼)을 지어 철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철학으로서의 역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것은 다시 한대 이후 점서로서의 역을 강조하는 상수(象數)의 역학과 철학적인 면을 강조하는 의리(義理)의 역학으로 갈려 왔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보는 주역이라는 책은 점서와 철학서의 두 얼굴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후대에 와서는 철학적으로 부연되고 설명되어짐으로써 수양을 위한 책으로 더욱 읽혀졌다. 주역은 우주와 인간이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며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가르쳐주는 동양적 지혜를 대표하는 경전이기에 학자들은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나날이 자신을 반성하여 닦을 뿐만 아니라, 사물이 변화하는 기미를 음미함으로써 우주와 인생에 관한 삶의 지혜를 터득하였던 것이다.
주역의 기본 사상은 자연의 법칙을 원용해 인간의 일을 밝히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것은 길(吉)이요, 그것을 거스르는 것은 흉(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