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긴 항로에 ‘명리학’이 숨어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고통스러울 때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이처럼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운(運)이 좋은지,나쁜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이에 따라 명리학(命理學)은 우리의 갈증을 풀어주는 유익한 학문의 하나로,인간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무대 뒤의 학문(學文)이라 하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식층으로부터 외면되어 왔었다.하지만 최근 들어 명리학(命理學)이 현대인에게 새롭게 그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학문(學文)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이는 다양하게 변화하는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함에 있어 그 중요성이 날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에 따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구청,문화센터,언론사,대학 사회교육원 등 공공기관의 교양강좌를 주도할 수 있는 명리학 엘리트 지도자 양성이 그 어느 때 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이는 분명 이론적(理論的)·논리적(論理的) 지식체계와 함께 학문적 원칙을 확립하는 작업인 동시에 제도권안에서도 명리학(命理學) 중심의 세대교체(世代交替)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그동안 우리 사회는 과학이나 다른 분야에서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다.그런 관점에서 명리학(命理學)을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 인간이란,소우주(小宇宙)이기에 무한무교(無限無敎)의 영역을 보유하고 있다.이와 같이 우주의 공간속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힘의 세계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과학이 극도로 발전한 오늘날에도 이 학문만 유독 소멸(消滅)되지 않고 우리의 마음에 깊이 뿌리 박혀 존재하는 이유는 암흑 속에 쌓인 본지로부터 자기의 운명을 밝혀 주는 등불인 명리학(命理學)이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예부터 명리학(命理學)을 만학(萬壑)의 제왕이라고 칭하여 왔다.그 이유는 본 학문자체가 그만큼 위대하다는 것을 뜻한다.또한 어떠한 학문과도 연결되는 명리학(命理學)을 연구함으로써 그만큼 박학다식(博學多識)해 진다는데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명리학(命理學)의 본질이 무분별한 난립으로 그 이치가 퇴색되고 있는 현실에서 찾아 볼 수 있다.오해와 편견으로 정립된 명리학(命理學)을 통해 재조명하기 위해 옛 문헌을 정리는 물론 끊임없는 학습으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그 깊이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학문이다 보니 연일 공부를 거듭해야 함에 있어 어렵겠지만,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먼저,책이란 글로 이루어졌고 글이 나오기 전에는 대자연이 있었음을 깨달아야 한다.옛 선인들은 대자연을 먼저 이해하고 글을 표현했으나 후학들은 대자연을 파악하지 못한 채 글을 쓰고 있다. 대자연을 표현하지 못한 글은 가치가 없다는 얘기다.그렇다고 해서 고전적 이론에만 치우친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적용해서는 맞지 않는다.
고전이론을 타파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고전적 이론을 10년 이상 공부하고도 자신의 사주팔자(四柱八字)조차도 분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이제 명리학(命理學)이 미신이라는 불신과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고전이론을 토대로 보다 과학적인 학문으로서 명리학(命理學)을 더욱 연구·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임을 명심하자.
명리학(命理學)의 기원은 출생이 일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신비로운 진리를 밝힌다는 데서 시작되며,이미 3천년 전부터 행하여져 왔음이 문헌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이를 통해 고대 중국인들은 인간의 생애에 있어서 출생이라는 것이 가장 우연적인 사실이며,이 우연에 의해 어떻게 필연적인 인생행로가 전개되어 나가는가에 대한 규명을 위해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이치를 원용하며 학문적인 체계를 이룩해 왔다.
우리나라의 사주명리(四柱命理)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이보다 한참 후인 조선조에 들어와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확인할 수 있다.제도상으로는 태조 원년인 1392년부터이지만 과거제도의 잡과(雜科)에 음양과(陰陽科)가 편성되면서부터이다.초기에는 문신,후기에는 기술관이 훈도(訓導)에 임명되었으며 과거제도의 음양과는 천문학(天文學),지리학(地理學)과 함께 명과학(命課學)을 두어 각 분야별 인재를 등용하는 관문으로 기능했다고 전해진다.
초기에는 문신,후기에는 기술관이 훈도에 임명되었으며 시험은 관상감(觀象監)에서 주관하여 별도로 훈도(訓導)를 두고 생도를 모집하고 명과학(命課學)의 인재를 양성하였다.이들이 시험을 치르거나 배워야 하는 과목으로는 원천강(袁天綱) · 서자평(徐子平) · 응천가(應天歌) · 범위수(範圍數) · 극택통서(剋擇通書) · 삼진통재(三辰通載) · 대정수(大定數) · 육임(六任) · 오행정기(五行精記) · 자미수(紫微數) · 현여자평(玄輿子平) · 난대묘선(蘭臺妙選) · 성명총화(星命摠話) · 경국대전(經國大典) 등으로 1차 시험인 초시(初試)와 2차 시험인 복시(覆試)로 나뉘어 3년마다 시행되었으며,복시는 예조(禮曹)에서도 함께 주관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명리학(命理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누구든 큰 틀의 운명(運命)을 갖고 태어난다.사람들은 그 틀 안에서 수많은 결정을 내리게 된다.때문에 운명을 결정지을 경우의 수는 무한한 셈이다.이런 점에서 보면 명리학(命理學)의 운명론(運命論)적 사고는 인간의 의지를 부정하지만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즉,사람의 운은 90% 이상 정해져 있고,이에 따라 근본적인 운(運)은 변하지 않지만 주어진 운명(運命)에 대해 어떻게 순응하고 개척하느냐,얼마나 자기 인생을 잘 관리하느냐가 일생(一生)의 성패(成敗)를 가름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명리학(命理學)의 본질은 개인의 그릇(命)과 운(運)을 보고 ‘때’를 알아 진퇴(進退)시기를 분별하는 데 있다.명(命)과 운(運)은 필연적이고 초월적인 힘을 뜻하며,운(運)이란 변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실상은 변하는 이치도 이미 정해진 궤도를 따르는 필연적인 과정일 뿐이라는 얘기다.
명리학(命理學)은 그 명칭에서 확인할 수 있듯,그에 따른 의미처럼 죽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오직 살아 숨쉬는 것을 그 대상으로 한다.그래서 명리의 명(命)은 목숨 ‘명’자를 쓰는 이유이다.우리 인간은 실존 즉 살아있는 것 자체가 이미 목적인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죽게 되어 있다.그것이 끝이든 새로운 시작이든 우리는 현재의 육신(肉身)으로 그것을 인식 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또한 명리학(命理學)은 사주(四柱)의 여덟 글자를 통해 인간의 명(命)을 나타내는데 사주(四柱)는 그 사람의 초년(初年),중년(中年),말년(末年)의 운(運)을 크게 3가지로 구분해 표시하고,10년을 단위로 변하는 대운(大運)과 해마다 바뀌는 세운(歲運),그리고 월(月)·일(日)·시(時)의 운(運)을 표시한다.살아있는 동안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현재를 편히 살 수 있는 것이기에 사주(四柱)에 의거하여 일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판단하는 학문이 명리학인 것이다.이에 따라 명리학(命理學)은 사주학(四柱學)이라 불리기도 하는데,사주(四柱)의 기원은 출생을 가장 중요시한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주(四柱)는 그 사람의 조상,부모,형제,배우자,자식의 운(運) 그리고 학문,직업운을 말해 주며 신체의 질병과 요수(夭壽)를 말해 준다.뿐만 아니라 성격과 이성관계,궁합과 택일 등 인생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모든 것을 표시해 준다.개인의 사주,즉 생(生)·연(年)·월(月)·일(日)·시(時)를 중심으로 하여 인간의 운명을 예지하고 대비하려 한 것은 사주(四柱)가 가장 우연한 결과로 인간의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또한 연(年)·월(月)·일(日)·시( 時)가 각각 독특한 기(氣)를 띠고 있을뿐만 아니라 일정한 법칙이 존재한다.
인간의 운명을 사주(四柱)를 통해 관찰이 시작됐고,그것이 점차 학문적 체계를 갖춤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명리학(命理學)을 성립하게된 것이다.이처럼 자연의 이치,우주의 원리,나의 근원으로부터 시작된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생극제화로 이루어진 학문(學文)인 명리학(命理學).특히 생명의 태어남과 함께 부모가 주는 가장 큰 선물로,운세에도 좋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조화로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없을 것이다.하늘의 변화와 땅의 신비를 가진 인간을 소우주(小宇宙)라고 인식하고 음양오행(陰陽五行)에 기초를 둔 학문(學文)으로써 말이다.
명리학(命理學)에 의해 매일 일운(日運)을 보지 않더라도 예감이나 꿈을 통해서도 사고를 예견할 수 있으나 모든 사람들이 이를 무시하고 사고를 당한 후에야 비로소 인정하는 것이 바로 명리학(命理學)인 것이다.이는 사건을 예지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임종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긴 항로를 갖가지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전자를 근거로 가장 현명한 사람은 이를 미리 알고 적절하게 대처해 나가는 사람이다.악재가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미리 알고 대처하면 대길(大吉)한 사주(四柱)를 가지고도 이를 알지 못하여 기회를 놓치고 운(運)을 잡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윤택하고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명리학(命理學)이 인생의 운(運)과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미리 알아 그것에 잘 대처하여 윤택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학문이지,결코 정해진 운명(運命)을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비관적 운명론(運命論)을 주지시키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결론적으로 인간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누구를 막론하고 명리학문(命理學文)을 배움으로써 자아발전(自我發展)은 물론 우리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명리학(命理學)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 도움말-동방대학원대학교 문화교육원/명리학과 노재환 교수
출처 : 인생의 긴 항로에 ‘명리학’이 숨어있다 - cafe.daum.net/dur6f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