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의 천간(天干: 甲乙丙丁…)과 12개 지지(地支:子丑寅卯…)를 조합해 연월일시를 나타내는 사주팔자(四柱八字)로 운명을 점치는 사람들이 역술가(易術家)다. 야사에서 영조는 갑술년·갑술월·갑술일·갑술시의 ‘사갑(四甲) 사주’로서 역술가들의 단골 소재였다. 영조가 당대 제일의 역술가에게 사주를 제시하자 ‘제왕의 사주’라고 맞혔다. 뒤이어 영조와 사주가 같은 백성을 부르니 그는 오대산 양봉가(養蜂家)였다. 영조가 “나와 사주가 같은데 왜 운명은 다른가?”라며 역술가를 벌하려 하자 양봉업자가 “저는 여덟 아들에 벌통 360여개가 있어서 전하께서 팔도, 360개 군현을 가지신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해서 영조가 “네 말도 맞다”며 살려주었다는 야사이다. 그러나 ‘영조대왕 행장’에 따르면 영조는 갑술년(1694), 갑술월(9월), 무인일(戊寅日:13일)생으로 사갑 사주가 아니다.‘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은 ‘성소부부고(惺所覆?藁)’의 ‘산으로 돌아가는 중 해안(海眼)을 전송하는 서(序)’에서 승려 해안과 사주가 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는 예문관 검열이 됐는데 그대는 왜 해진 장삼을 입고 바위 굴 사이에 숨은 승려가 되었는가”라고 의문을 던진다. 그러나 허균은 자신도 불교를 좋아한다며 “수레와 비단옷이 몸에 있어도 오히려 병발(甁鉢:병과 바리때)의 자유로움만 같지 못하니, 내 영화와 저의 시듦은 서로 보상될 만하다. 운명을 이야기하는 자도 근사하다 하겠다”라고 긍정하기도 했다.순암 안정복(安鼎福)은 ‘상헌수필(橡軒隨筆)’에서 역술에 밝았던 동진(東晉)의 곽박(郭璞)이 왕돈(王敦)에게 ‘크게 흉할 것’이란 점괘를 말했다가 죽은 예를 들면서 “곽박이 만일 이런 역리(易理)에 밝았다면…일찍이 피하지 못했겠는가”라며 “그 소소한 기예는 족히 믿을 것이 못 된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중국 남경(南京)의 사주가 같은 부부가 출생 병원과 졸업 학교, 직업 등 무려 30가지 공통점이 있다 해서 화제이다. ‘부부일신(夫婦一身)’이라는 사자성어처럼 앞으로의 운명도 같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