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역학이야기

점술에 대한 동서양적인 고찰

깡통박사 | 2017-09-30 08: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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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이란 인류가 미래의 일어나는 일의 결과를 알기 위하여 행하는 기본적인 행위중의 하나이다. 뉴턴 역학이라는 고전 역학이 전성기를 누리던 100년전만 하더라도 과학적인 방법에 의한 예측의 수단은 지고지선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라플라스와 같은 과학자만 하더라도 모든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주어진 초기조건만을 정확하게 자기에게 알려준다면 자연현상을 포함하는 궁금한 모든 사안을 정확하게 예측하여 주겠노라는 허망한 호언장담을 서슴치 않았다.(ㅎㅎㅎ)

그러나 이러한 고전역학자들의 절대적인 인과율에 기초한 꿈은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 그리고 카오스와 같은 새로운 이론이 대두되면서 서서히 그 꿈이 와해되어갔다. 양자역학적인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고전역학의 절대적인 인과율은 무참하게 무너졌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인슈타인과 그의 동료들에 의하여 밝혀진 EPR 파라독스라는 것으로서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소립자 간에 일어나는 현상으로서 하나의 소립자에 일정한 작용을 가하면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다른 소립자에도 같은 결과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신은 주사위 놀음과 같은 확률 게임을 하지 않는다면서 인과율에 기초한 이론전개를 고수하엿던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스스로의 결과를 부정하고 싶어하였지만 아인슈타인 시대에 몇십년간에 걸친 실험결과는 명명백백하게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것은 동양의 점술 또는 주역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졌던 서구의 석학인 칼융의 동시성 이론에 토대를 제공한다.

즉 칼 융의 동시성이론은 물리학이론으로는 'EPR의 逆說'에 기초한다. ‘EPR의 逆說’은 1935년 EPR, 즉 아인슈타인(E), 포돌스키(P), 로젠(R)에 의해 씌어진 한 연구 논문과 더불어 시작된다. 이 논문에서 그들은 공통된 기원을 갖고 있는 두 개의 입자 혹은 광자를 갖고 행한 실험에서 비록 A와 B가 서로 격리되어 있으며, 두 개의 입자 혹은 광자가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음에도, 양자론은 이 두 개의 입자나 광자 중 A의 장소에 위치하고 있는 것의 측정 결과가 B에 있는 다른 것의 측정 결과에 의존하게 될 것임을 예측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표함으로서 주목을 끌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효과를 '幽靈의 遠隔作用'으로 언급하였으며, 보통은 'EPR paradox'로 불리고 있다.

한마디로 동양의 점술은 절대 시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대성 이론과 동시성(syncronocity)이론에 기초한다. 즉 하나의 사안에 대한 정보나 단서가 홀로그램적으로 다양한 차원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안에 대한 정보가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과 맥을 같이한다. 즉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절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으로서 절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현재의 시공간에 던져진 하나의 정보를 가지고 그 정보에 대한 미래의 정보를 시공간 여행을 통하여 가져올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래 또는 다른 차원의 정보를 가져올수 있는 도구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기 또는 에너지이다. 마음이라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창조적인 기능을 가진 에너지로서 동물이 가지지 못한 인간의 고유한 기운이다. 이러한 마음의 에너지는 환경의 변화에 따른 기운과 1:1로 대응하면서 필요에 따라서 공명을 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시간이라는 변화의 기운을 가지고 점을친다는 것은 한마디로 환경변화에 대하여 우리의 마음이 공명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는 神機라고 표현할수도 있다.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우리의 선조들은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서 받은 이상한 느낌을 가지고 주섬주섬 짐을 꾸려 몇십리 떨어진 마을에 친척이 상을 당한 것을 알고 문상을 갈 채비를 한다. 이러한 범인이 보지못하는 마음의 현상에 대하여 이를 학문적으로 체계화 한것이 바로 동양의 역학이다. 투척점을 치든지 서죽을 사용하던지 시간점을 치든지간에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잇는 현상으로 나타내고자하는 역의 방법이다.

동양의 역학은 한 마디로 象과 數로 특징되는 象數이론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象이란 자연현상에 내재된 물리적인 의미이며 數라는 것은 이러한 상을 숫자로 표시한 것이다. 부호나 그림으로 표시한 주역의 괘상이나 음양오행의 정의는 한마디로 동양의 성인들이 자연의 복잡계 시스템을 관찰한 후 자연의 압축파일을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동양의 역학은 天垂象聖人測之(천수상성인측지)라는 말로 표현되며 이러한 상과 수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를 부지상수자 격화소양(不知象數者 隔靴搔痒)이라는 말로 표시하고 있다.

점을 치는 방법은 많이 있다. 기을임삼식 등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던지간에 중요한 것은 점의 응기의 민감도와 정확도가 중요한 것으로서 알고자하는 내용과 자기에게 맞는 도구를 사용하여 점을치면 되는것이다. 점을쳐서 미래의 일을 안다면 여기서 우려되는 상황중의 하나는 그것은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는 운명론적인 사고에 경도되는 일일것이다. 이것은 어떤면에서는 맞는 이야기이면서 또한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줄이 끊어진 엘리베이터 속에 탄 운명이라면 자기의 의지에 관계없이 중력가속도에 의한 충격을 피할 방법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경사진 비탈길에서 구르는 운명이라면 이경우는 자기의 의지에 의하여 이를 피하거나 최소할 방법을 모색할 운명에 처한 것이다. 한마디로 인생이라는 것은 이제까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관성(inertia)과 자기의 의지가 합쳐져서 나타난 결과이기 때문에 사주팔자와 같은 운명적인 힘이 너무나 강하면 자기의 의지로도 어떻게 하여 볼 수 없는 극한적인 상황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안의 반전 여부를 차지하고라도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피흉추길의 관점에서 더할나위 없는 매력적인 도구임에는 분명한 것이다.

이러한 미래의 예측을 형이하학적인 과학적인 분야로 한정한 것이 서양의 과학이고 이것을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는 기의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 동양의 역술이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두개의 역학이 존재한다. 하나는 과학적인 변화를 관찰하는 힘역자 力學이고 다른 하는 기의 변화를 예측하는 변화할 역자 易學이다. 서양의 과학이 에너지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을 이해하여 기의 차원으로 업그레이드된다면 그들도 조만간 동양의 역학에 대한 진지한 이해를 가지게 될 것이다.
 
장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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