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역술
정치가와 역술가의 관계는 무엇인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이다. 악어새는 악어의 입 속으로 들어가 이빨 사이에 끼여 있는 고기 찌꺼기를 부리로 청소해 주면서 먹고 산다. 악어새는 찌꺼기를 청소해 주다가 운이 좋지 않으면 악어 이빨에 씹히는 수도 있다. 함양군 서상면 출신의 제산 박재현(1935~2000). 그는 1970~80년대에 영남의 거물급 정치인들 사이에서 ‘박 도사’라고 하는 이채로운 호칭으로 불리던 인물이었다. 7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박 대통령이 ‘유신’(維新)을 단행하려고 결심하고 나서, 청와대 모 비서관을 보내 박 도사에게 ‘유신’에 대한 점괘를 물어보았다. “유신(維新)이라고요? 그런데 이게 ‘유신’(幽神)이라고 나오네요!” 담배은박지에 볼펜으로 ‘유령이 된다’는 뜻의 ‘유신’(幽神)이라는 두 글자를 휘갈긴 덕분에 박 도사는 남산 지하실에 들어가 혹독한 고초를 겪어야만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는 악어 이빨에 물린 경우이다.
포철의 박태준 전 회장도 박 도사를 상당히 아꼈다. 대단한 예지력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박 도사도 또한 박태준을 나라의 인물로 생각하였다. 90년대 초반 YS와 박태준이 대권후보 경쟁을 벌일 무렵에, 박태준이 박 도사를 만나기 위하여 직접 헬기를 타고 함양 서상면의 중학교 운동장에 내린 적이 있었다. 당시 일간신문 가십난에 이 일화가 보도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사람의 독특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90년대 중반 YS 대통령 임기 말에 DJ는 다시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서 박태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소위 ‘DJT(김대중 김종필 박태준) 연합’을 구상하던 시기였다. DJ의 연합 요청을 받은 박태준은 오랫동안 고민하였다. 호남의 맹주인 DJ와의 연합은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정치이력과 맞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박태준에게 박 도사는 한반도 지도를 펼쳐놓고 가운데로 금을 그으면서 “앞으로 30년은 서쪽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라는 조언을 한 바 있다. 그렇지만 이 말 듣고 박태준이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이번 대선에서도 ‘서쪽(호남)표’가 어디로 갈지가 변수이다. 과연 호남민심이 DJ의 훈수대로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각자 알아서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