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운(崔水雲)이 남긴 동경대전(東經大全)의 내용 가운데에는 ‘불연기연(不然其然)’ 장이 있다.
‘연(然)’은 ‘그렇다’는 긍정의 의미를 지닌다. ‘불연기연’을 풀면 ‘그렇지 않다, 그렇다’의 뜻이 된다. 따라서 불연기연은 ‘부정을 통한 대긍정’의 의미로 해석된다. 세상사가 처음에는 전부 부정적으로 보였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생각해 보니까 이해 못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대긍정을 이야기한 것으로 풀어볼 수 있다. 말하자면 ‘연철학(然哲學)’이다.
흥미롭게도 이 ‘연철학’과 비슷한 내용이 300년 동안 만석꾼을 지냈던 경주 최 부잣집의 가훈에서도 나타난다. 최수운과 최 부잣집은 같은 경주 최씨로서 선대에 올라가면 서로 왕래가 많았던 일가친척의 관계였다.
최 부잣집에서 자식들을 교육시킬 때 강조하였던 내용이 바로 육연(六然)이다. ‘6가지를 그래야 한다’는 가훈이다. 자처초연(自處超然·혼자 있을 때는 초연하라), 대인애연(對人靄然·사람을 대할 때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만나라), 무사징연(無事澄然·일이 없을 때는 맑고 고요하라), 유사감연(有事敢然·일이 있을 때는 과감하라), 득의담연(得意淡然·뜻을 얻었을 때에도 담담하라), 실의태연(失意泰然·실패했을 때에도 태연하라)이 그것이다.
만석꾼이라 하면 오늘날의 재벌에 해당한다. 재벌 집의 가훈이 바로 이 ‘육연’이었다. 재벌 집의 자식이라면 6가지의 연(然), 그러니까 6가지 대긍정의 경지에 들어가야 만석의 재산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된다고 여겼던 셈이다. 만석꾼을 유지한다는 것은 재테크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인격적인 수양이 뒷받침되어야 했던 것이다.
사실 이 6가지는 어느 한 가지도 만만한 경지가 아니다. 그래서 역대 최 부잣집 자식들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먹을 갈아 붓으로 이 육연을 쓰는 훈련을 받았다. 현재 최 부잣집 주손인 최염(74)씨도 매일 아침 6시가 되면 조부님이 계시는 사랑채로 건너가, 조부가 직접 보는 앞에서 이 육연을 썼다고 한다. 유년시절부터 육연을 매일 반복하게 함으로써 아예 세포에 각인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요즘 재벌 망신은 한화의 김승연 회장이 다 시키고 있다. 재벌들은 최 부잣집의 육연을 공부해야 한다.
[조용헌]
출처 :서라벌의 별
원문보기▶ 글쓴이 : STE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