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중숙의 사이언스크로키
영화 <허리케인>에서 백인 처녀는 열대섬의 원주민 청년에게 마음이 끌린다. 둘은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데, 여주인공은 어느 대목에서 “이름에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청년의 이름은 ‘마탕기’였는데, 그 처녀는 청년의 이름에서도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이름은 언어적으로 아무런 연관도 없는, 우리가 듣기에도 어딘지 신비로움이 감도는 듯하다. 또 뭔가 어렴풋한 호감이 솟아나는 것도 같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굳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처럼 어떤 존재나 현상에 좀더 좋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학 분야에도 이런 예가 많다. 머레이 겔만은 ‘쿼크’란 이름을 창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소립자의 구성 성분으로 알려진 이 개념은 조지 츠바이크도 독립적으로 발견했으며 그는 이것을 ‘에이스’라고 불렀다. 이 두 단어를 두고 볼 때 적어도 의미상으로는 아무런 뜻도 없는 ‘쿼크’보다 여러 가지 좋은 뜻을 가진 ‘에이스’가 더 낫다. 하지만 어쩐 연유인지 사람들은 쿼크란 말을 더 많이 사용했고 결국 오늘날 에이스란 명칭은 자취를 감췄다.
겔만은 소립자 분류에 쓰이는 ‘팔중도’란 이론의 이름을 불교의 ‘팔정도’에서 따와 지었다. 흥미로운 것은 유발 네만이란 과학자도 이를 독립적으로 완성했는데 이 멋들어진 명칭 때문에 그 뒤 거의 겔만 혼자만의 업적처럼 인식되고 있다. 겔만이 작명에 이처럼 뛰어난 감각을 보이는 데는 그의 취미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언어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하여 수많은 동식물의 이름을 섭렵하는 한편, 만나는 사람의 이름에 대한 유래를 설명해줌으로써 본인들까지 놀라게 했다.
이름은 단순히 좋은 느낌뿐 아니라 어떤 관념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프랙털’(fractal)은 어느 한 개체의 전체 모습이 낱낱의 구성 단위를 자꾸 반복하면서 이뤄지는 경우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미국의 수학자 만델브로트는 그 이름을 ‘부분(fraction)을 닮은(-al) 모양’이란 뜻을 갖도록 지었다. 이에 따라 산맥, 해안선, 식물, 결정의 모습 등 자연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프랙털 현상에 대해 쉽고도 빠른 직관적 이해를 전해준다.
‘블랙홀’도 처음에는 ‘중력적으로 완전히 붕괴한 존재’라는 복잡한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존 휠러가 세미나를 하면서 자꾸만 이렇게 부르자 마침내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냥 ‘블랙홀’이라고 하면 안 되나요”라고 소리쳐 새로운 이름으로 거듭났다. 블랙홀은 이와 같은 간명한 이름을 가진 뒤 일반인에게도 선명한 이해를 심어주는 친근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이런 이야기들은 어떤 일에서 내용 못지않게 형식도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과거 한참 동안 우리 교육은 너무 형식에 치우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해는 제쳐둔 채 답만 잘 얻어내면 그만인 때가 있었다. 이에 대해 당연하게도 근래 비판의 소리가 높다. 하지만 반발이 지나친 탓인지 때로는 형식을 너무 무시하는 때도 많다. 알맹이가 소중하면 포장도 예쁘게 담아내야 헛고생을 면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한 차원 높은 단계에서 말 그대로 ‘명실상부’한 조화를 꽃피워야겠다.
고중숙 |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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