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역학이야기

성격과 운명의 비밀 코드, 12동물 띠 이야기

깡통박사 | 2017-09-30 08:3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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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과 운명의 비밀 코드, 12동물 띠 이야기
 
쥐띠·들끓는 색욕
소띠·만삭의 모태
호랑이띠·어짊과 포악의 양면성
토끼띠·애욕의 화신
용띠·용솟음치는 생명기운
뱀띠·현실적 욕망에 탐닉
말띠·지배욕과 부의 상징
양띠·속죄와 종교심
원숭이띠·반수반인의 손오공
닭띠·이별의 그림자
개띠·귀신을 제압하는 권능
돼지띠·번뇌의 집합처

정경대 < 철학박사 · 삼성연구원원장 >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나이를 따질 때 곧잘 띠가 뭐냐고 묻는다. 그런데 아직까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띠에 대한 이론을 정립해 놓은 바가 없다. 그저 정초가 되면 쥐,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하는 식으로 띠를 논할 뿐이다. 사람마다 열두 짐승의 띠가 매겨져 있고, 해마다 차례를 정해 띠를 배속시켜 놓으면서도 이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이다.
아무튼 아무도 그 의미를 말하지 않으며 또 알려고도 하지 않지만, 열두 짐승의 띠는 학술이나 종교적 신념에 관계없이 우리 한국인의 심성 한 켠에 늘 자리하고 있다. 이 열두 짐승은 혼인할 때 혹은 팔자 타령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참으로 인간과 기이한 인연을 맺은 짐승들이라 할 수 있다.
열두 짐승은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멀리는 인도와 티벳, 가깝게는 중국, 일본, 몽골에서 민중 속에 두루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인식 속에 왜 이 짐승들이 굳게 자리잡고 있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열두 동물은 단순히 토템신앙의 산물이거나 혼인 여부 등을 예단하기 위해서 짐승들의 이름을 끌어다 붙인 것이 아닌, 고대인의 놀라운 지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역학(易學) 저서에서는 발톱이 짝수면 음(陰)이고 홀수면 양(陽)이 되는 이치에 의하여 열두 짐승을 차례로 배속시켰다는 중화인(中華人)들의 억지 논리를 그대로 베껴 놓은 것말고는 다른 설명이 없다.
결론부터 먼저 밝히자면 띠에는 인간의 일체 성정(性情)이 다 들어 있다. 열두 마리 짐승을 하나로 묶어 놓으면 바로 사람의 심성이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 상징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불교조각 예술에서는 열두 짐승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기이한 12지상(十二支像)이 있는데, 이는 관세음보살의 현신(現身)으로 구원과 응징, 진리의 소리 등을 비유한 것이다.
시간별로 쥐는 야밤(23∼01시)에 배속되고, 소는 새벽(01∼03시), 범은 이른 아침(03∼05시), 토끼는 아침(05∼07시), 용은 늦은 아침(07∼09시), 뱀은 오전(09∼11시), 말은 정오(11∼13시), 양은 오후(13∼15시), 원숭이는 해거름(15∼17시), 닭은 초저녁(17∼19시), 개는 밤(19∼21시), 돼지는 늦은 밤(21∼23시)에 배속돼 있는데 이런 시간에 맞추어서 관세음보살이 짐승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서 인간을 경계하거나 인간세계를 두루 살펴본다고 한다. 실제 불교의 주요경전 중 하나인 천수경의 다라니는 이 짐승들에게 구원을 청하는 주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12지 신상(神像)은 경주의 괘릉이나 김유신 묘에 호위석으로도 등장하고 있다. 이 12지 신상은 땅의 열두 방위에 맞추어 배열돼 있는데, 각기 열두 동물의 얼굴에 몸은 사람으로 나타난다.
어디 그뿐이랴! 인도의 힌두교에서 등장하는 시바(Siva)와 비시누(Visinu) 신도 열두 가지 괴이한 형상으로 묘사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열두 짐승이 종교철학의 깊은 영역까지 아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띠는 인간의 일생을, 변화하는 기(氣)의 성질에 맞춰 펼쳐 놓은 것이고 더 나아가 기(氣)의 실체를 신(神)으로 승화시켜서 불교적 해석의 12지상이나 힌두교의 12가지 신의 형상으로 표현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열두 짐승을 한 줄에 꿰어 놓으면 인간의 속성을 발견할 수 있거니와 생로병사의 윤회법칙 내지 천지(天地)의 이치까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의약품 등을 개발하며 동물 실험을 할 때 열 두 짐승 중에서 골라 실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도, 열두 짐승의 성질이 사람의 생명 기운과 대단히 유사하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띠와 고대 천문학
그러면 이제 이론적인 시각으로 띠의 성질을 분석해보자. 열두 짐승의 의미를 알아보기에 앞서 띠라는 말의 뜻부터 짚어보기로 한다.
짐승 이름에 붙여 놓았기 때문에 얼른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띠는 우리가 늘 쓰는 말인데, 어린아이들을 업을 때 두르는 포대기의 띠와 같은 뜻이라 생각하면 된다. 마치 굴비를 새끼줄에 길게 꿰 두 끝마디를 매듭지어 놓은 것처럼, 사람의 일생에 열두 짐승을 차례로 나열해서 윤회시키면 띠를 두른 모양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고대인의 눈으로 우주를 이해한 법칙이 내재한다. 고대인들은 지구가 자전하는 하루를 열두 시간으로 나누었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1년을 열두 달로 구분했다. 또 지구가 우주의 중심 공간을 한 바퀴 도는 기간을 120년으로 보고 각기 열두 짐승을 나열해서 띠를 두르게 하였다. 서양의 고대 천문학에서도 우주 공간을 물고기좌, 전갈좌, 황소좌 등 열 두 별자리로 구분해 띠를 두르는 형태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열두 별자리가 사람의 운명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우주의 이치는 인간에게도 그대로 응축되어 나타난다. 인체의 등과 복부의 중심을 열두 마디 임·독맥이 띠두른 모양으로 흐르면서 육신의 모든 기관을 관장하는 것이나, 12경락 12지장 등이 모두 같은 논리로 설명된다.
필자는 종교 철학 의학 등 광대하게 적용되는 열두 띠의 상징성을 역학의 기론적(氣論的) 카테고리 안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즉 띠를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에 배속시킨 사주팔자가 그것이다.
사주팔자란 기(氣)의 성질을 표시한 여덟 개의 문자이자 일종의 부호(符號)라고 할 수 있다. 이 여덟 개의 부호는, 태아가 모태로부터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 천지(天地)를 운행하던 어떤 기질(氣質)이 육신(태아)에 덮치고 배어들어서 올가미처럼 얽어맨 운명의 거울이요, 한 인간의 심성을 느낄 수 있는 향기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기의 성질을 표시한 부호이자 띠를 이른바 후천운(後天運)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인간이 태어난 순간부터 그를 지배하는 필연적이고 초월적인 힘의 실체라는 게 동양의 역학 이론이다.
후천운과 대비되는 것으로 선천운(先天運)이 있는데, 이는 혼백(魂魄)의 씨앗과 대물림, 받아온 유전성 기질을 일컫는다. 선천운은 마치 깊은 바다와 같아서 범인의 인식으로 헤아리기가 불가능한 반면 후천운은 파도와 같아서 여덟 개의 부호(사주팔자)를 자세히 분석하면 능히 운명의 행로를 판단할 수가 있다.
아무튼 후천운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운명과 마음의 행실을 찾아내면 그 인간의 본체가 드러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동·식물은 물론 미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의 기운을 묶어놓은 소우주체(小宇宙體)이기 때문에 그것들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열두 가지 짐승과 가장 흡사한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인간의 마음은 열두 짐승의 성품을 그림자처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기질을 파악하려면 근본적으로 열두 짐승의 띠 코드를 해석해내야 한다. 이제부터 띠를 차례로 하나씩 예를 들면서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한다.

쥐띠 - 정자와 난자의 결합
첫째 띠는 쥐이며, 이것을 자(子)라 한다. 시간은 야밤에 속하는데, 자정에서 다음날 밝은 태양 빛이 어둠 속에서 잉태되는 시점이다. 일 년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동지에도 해당한다.
방위는 정북쪽이고, 겨울의 음기(陰氣) 속에 만물을 탄생시킬 일점의 양기(陽氣)가 불씨처럼 점화된다. 그러므로 자식을 의미하는 ‘자(子)’라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한 현지우현(玄之又玄)이다. 아득하고 아득하여 아무것도 분별할 수 없는 어둠에서 현묘하게 양기(陽氣)가 시생(始生; 비로소 시작됨)하여 음기(陰氣)와 화합해서 만물의 씨앗을 잉태한 창조의 모습이며, 소우주인 인간은 여성의 자궁 속에 정자가 난자와 결합해서 아이를 배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자의 마음은 고요한 본성을 깨고 인연을 찾아가기 위한 욕망의 그림자가 요동하는 찰나에 해당된다.
따라서 깊이 감추어진 속마음이 나타나지는 않으나 종잡을 수 없는 잡념에 시달리기도 하고, 여기저기 남의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따뜻한 인정을 그리워한다.
또 생명을 키워나가려는 강한 집념이 도사리고 있고, 그만큼 색욕(色慾)도 들끓는다. 색욕은 음·양의 결합으로 만물을 생산하려는 욕망의 기질이 끊임없이 육신을 자극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런 면에서 야밤에 활동하며 수시로 색을 즐기고 부지런히 새끼를 낳는 짐승은 아마도 쥐가 으뜸일 것이다. 그래서 자(子)를 쥐띠라 하였거니와, 생산의 원기(元氣)가 가장 많이 흐르기에 사람도 색을 밝히고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체질인 것이다.
특히 사주팔자 속에 쥐와 유사한 색욕의 짐승인 토끼나 닭이 함께 있으면 더욱 분명하게 색기(色氣)가 나타난다. 그로 인해 생식기 병을 앓거나 지나친 성욕 때문에 가정 불화를 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쥐의 기질을 육신의 만족을 위한 동물적 습성으로만 한정시킬 수 없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연혜이만물지종(淵兮以萬物之宗)이라 하였듯이, 자(子)는 생산의 원신(元神)으로 지극한 사랑을 근본으로 만물을 탄생시킨 ‘신의 집’과 같은 신령스러운 기질을 바탕으로 한다.
불교의 위대한 신(神) 관세음보살이 사람의 몸에 쥐의 머리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는 몸은 순수한 사랑의 본질을 의미하고 쥐 머리는 색욕을 상징한 것이다.
이런 형상으로 관세음보살이 자시(子時)에 중생을 두루 살펴본다는 것도 야밤에 색을 즐기는 인간의 욕망을 경계하는 교훈적 의미가 있다.
‘동의보감’에서 허준 선생이 “어둠이 가장 짙은 그믐날 성 관계를 맺으면 신장을 상하고 불효한 자식을 낳는다”고 말한 것과 일맥 상통한다.
그런데 참으로 불가사의한 현상이 있으니, 위대한 성자 원효대사가 자시(子時)에 수행을 깊이 하면 반드시 쥐로 둔갑한 마구니가 나타나거나, 쥐가 아닌 다른 형상으로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은 쥐의 화신(化身)으로 수련자의 수행을 방해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는 야밤에 쥐의 정령이 활동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으로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만물을 잉태한 음·양의 화합 기운이 색기의 음산한 속성을 머금고 땅으로 하강하기에, 그리고 그것은 쥐의 형상이 될 수밖에 없는 기질이라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는지?

소띠 - 만삭이 된 모태
둘째 띠는 소이며, 이것을 축(丑)이라 한다. 대지를 밝힐 태양이 아직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먼 곳에 숨어 있는 새벽 1시에서 3시 사이에 해당한다. 방위로는 동쪽이 시작되는 북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계절로는 봄이 되기 직전의 겨울이다.
이렇게 축은 자(子)에서 잉태된 양기(陽氣)가 완전하게 성숙해서 곧 터져 나오려는 기질을 머금고 있다. 마치 초목의 씨앗이 싹을 터뜨리고, 만삭이 된 모태에서 아이가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려 하는 것과 같다.
이는 ‘도덕경’에서 노자가 말한 ‘현빈지문시위천지근(玄牝之門是謂天地根)’이다. 아득하고 현묘한 암컷의 문으로 천지의 뿌리가 되는 이곳은 바로 소우주로 축소된 여성의 자궁(子宮)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축(丑)은 태어나기 직전의 기질이므로 왕성한 힘과 의지가 굳으면서도 감상적이며, 가장 세속적인 반면에 산중에 은거하고 싶은 도인적 성품도 엿보인다. 이는 태어나면 세상 일에 관여해 부지런히 일하며 욕망을 채우려는 기질과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고뇌가 함께 상존하기 때문이다.
소는 새벽에 일터로 나가서 해가 저물어야 쉴 수 있는, 노동을 대표하는 짐승이다. 수레를 끄는 소의 멍에는 인간의 운명의 속박이며, 짐은 그리 될 수밖에 없는 업(業:Karma)이라 할 수 있다. 이와같이 인간은 태어나면 소처럼 고달픈 운명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소는 어진 성품으로 멍에를 거부하지 않고 맡겨진 수레를 끝까지 끌다가 죽어서는 고기와 가죽을 남겨 덕을 베푼다. 바로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릇된 길도 마다하지 않으며 얻은 것은 절대 놓지 않으려는 인간에게는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가 끌어온 수레의 짐은 소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베푸는 이로운 물건이므로 무위(無爲)의 도(道)를 펼치는 하늘의 마음이며, 인간이 마땅히 그리해야 할 참 성품이다.
힌두교에서 소를 ‘옴’이라 하는데, 신이 인간에게 덕을 베풀기 위해서 ‘소를 타고 온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옴(om)을 우주의 소리라 해석하지만, 우주 본성이란 원래 고요함이 그 근본인데 소리 운운하는 것은 소의 이치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십우도(十牛圖)에서 잃어버린 소를 찾은 동자가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면서 돌아오는 것도, 오염된 마음 때문에 잃어버린 소와 같은 참 성품을 찾아 기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기(氣)의 논리로 보아도 그렇다. 기는 항상 마음과 함께 한다. 마음 가는 곳에 기가 있고, 기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그러므로 마음 씀씀이에 따라서 기가 움직여 몸 속을 들어오고 나가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착한 일이건 악한 일이건 무엇이든 마음으로 지극히 원하면 천지에 가득한 기질이 그 뜻대로 몸 속에 들어와서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후천운인 사주팔자는 불변이 아니라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고요히 앉아 수행으로 오염된 마음을 지우고 본성을 찾으면 업을 소멸시킬 수 있는 신령스러운 기질이 빗줄기처럼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바로 이때 타고난 사주팔자의 코드가 변화하는 것이다.
역학의 이치가 이러한데도 쥐와 마찬가지로 소띠에도 역시 해법을 찾을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 있다. 소띠 시간에는 소의 형상을 한 마구니가 수행을 방해한다는 원효 대사의 말이 그것이다. 물론 열두 가지 짐승이 다 그러한데, 세속적 욕망의 기질을 가진 생명의 기운이 각각 배속된 시간과 날, 그리고 월과 해에 강하게 운행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범띠 - 어짊과 포악의 양면성
셋째 띠는 범(또는 사자)이며, 이것을 인(寅)이라 한다. 시간으로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태양의 빛이 어둠 속을 헤집고 희끄무레하게 대지를 밝히는 새벽 3시부터 5시이며, 방향으로는 동쪽이 시작되는 처음 방위이고, 계절로는 음력 1월, 즉 봄이 추위를 뚫고 나오는 때다.
만삭이 된 축(丑)에서 비로소 만물이 생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씨앗이 씨눈을 터뜨리고,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며, 아이가 열린 자궁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과 같다.
인의 마음은 욕망이 끓어올라 그 욕망의 대상을 찾아가는 현상에 비유된다. 처음으로 튀어나오는 기운이기에 생명력이 가장 왕성하고 강력하여 굽힐 줄 모르는 고집과 자존심이 작용한다.
그리고 그 기세만큼 성격이 급하고 포악한 일면이 있는가 하면, 도(道)를 얻고 싶은 어진 심성이 있으며, 무엇을 깨치는 능력도 탁월하다. 이는 육신이 품은 세속적 욕망의 기질과 하늘의 도가 펼쳐지는 기운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상징하는 범(인도에서는 사자에 비유함)은 백수의 왕으로 가장 용맹스러운 짐승이거니와, 우렁찬 소리 하나만으로 능히 여러 생명을 떨게 하는 지배자로서 위엄 내지 포악성까지 겸비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붓다(Buddna)의 목소리를 사자후(獅子吼)에 비유하고, 웅변가의 기세당당한 소리 역시 사자의 포효에 곧잘 비유한다.
그러나 부처의 음성을 사자처럼 우렁차기 때문에 ‘사자후라 한다’고 해설하는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실 사자의 울음은 소나 다른 동물에 비해 그리 크지도 않거니와 부처의 말씀을 포악한 짐승 소리에 비유한 것 자체가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 해설인 것이다. 또 사자는 포악한 군주에 비교될 수는 있어도 어진 스승에 비유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부처의 음성에 비유한 것은, 부처의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든 동물과 식물 그리고 미물에 이르기까지 그 생명의 기질을 뭉뚱그려서 형성된 대자연의 종합 박물관과 같다. 그러므로 그런 기질로 짠 육신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므로 중생(衆生)이라 하거니와, 부처가 설파하는 진리의 말씀은 마치 사자가 모든 생명을 떨게 하듯 인간의 가지가지 중생심을 겁내게 하여 오염된 마음을 깨끗하고 고요하게 잠재울 수 있는 위대한 힘이 되기 때문에 사자후라 하였던 것이다.
웅변가의 목소리도 그와 같다. 아무데서나 악을 쓰고 구호를 외치듯 목소리를 높이는 자는 진정한 웅변가가 될 수 없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일지라도 잊었거나 깨치지 못한 대중을 상대로 진실을 일깨워 짜릿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라야 참으로 뛰어난 웅변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이 사람의 몸에 호랑이나 사자의 얼굴로 화신(化身)한 것이라 설명하는 것도 육신의 중생심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겁내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범이나 사자같이 포악한 심성의 내면을 표현한 것이다.
역학의 기 이론에서 보아도 이런 인간의 양면성이 절묘하게 나타난다. 범띠 인(寅)은 목기(木氣)에 속하고, 목기는 어진 성품을 의미한다. 태초에 음과 양이 화합해서 만물을 탄생시킨 원신(元神)의 기질이 목이기 때문이다.
인체를 구성하는 오장(五臟) 중에서 간·담이 바로 목기다. 그러므로 팔자에 목기가 있는 사람은 성품이 어질다.
그러나 목기가 너무 강하면 간·담의 기가 심해서 다른 오장을 억압하고 성격도 포악하게 나타난다. 다른 오장의 기질과 균형이 맞지 않아서 어진 기질이 병들고, 지나친 기세를 억제하지 못해서 목소리가 높고 급한 성미에 마음이 맞지 않으면 극도의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것이다.

토끼띠 - 애욕의 상징
넷째 띠는 토끼이며, 묘(卯)라 한다. 때는 아침 해가 정동쪽 방위에 불끈 솟아올라 찬란하게 대지를 밝히는 아침 5시부터 7시 사이다. 인(寅)에서 하늘 문을 열고 나온 뭇 생물이 기지개를 켜고 성숙해지는 기운이 천지에 가득한 음력 2월, 이른 봄의 따사로운 햇빛이 추위를 서서히 밀어내는 시기다.
초목은 여리고 부드러운 싹을 틔워 부지런히 성장하고, 모태를 벗어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소년시절을 보내는 것과 같다. 아직 어리고 가냘픈 싹이나 아이나 병아리처럼 순진해 보이지만, 추위를 밀어내는 봄기운처럼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인내와 솟구치는 기세가 대단해서 가슴 속에 뜨거운 욕심이 도사리고 있다.
피어나는 기상은 화려함을 좋아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오기가 발동해서 미친 듯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묘도 인처럼 천성이 어진 목기(木氣)이기 때문에 측은지심이 내면에 자리잡고 있어서 베풀기도 잘한다.
묘(卯)의 기질은 아직 추위가 남은 이른 봄기운이 여름을 향해 열기를 더해 가듯이, 성숙해지는 육신의 정력이 맹렬하게 타오르므로 이성을 동경하고 그리워하며 애욕을 참지 못한다.
정(精)은 응축된 생명의 기질일 뿐만 아니라 육체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자 번식을 위한 생식기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정력이 떨어지면 육신이 쇠퇴하고 고갈되면 번식도 할 수 없으며 죽음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정기는 늙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말초신경을 자극해서 끊임없이 색욕을 밝힌다.
만일 묘와 같은 성질인 쥐띠 자가 팔자에 또 있으면 더욱 분명하게 색욕의 기질이 나타난다.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성욕 때문에 복잡한 이성 관계를 맺게 되며 그로 인해 생식기에 무서운 병을 앓기도 한다.
생명의 근원이 정액이며, 이것은 여성의 자궁속 양수처럼 어두운 음기(陰氣)의 물과 양기(陽氣)가 화합해서 생출되었으므로 그 기질대로 종족을 번식시켜 나간다. 종족의 번식은 정액을 대물림하는 것이므로 생명의 연속이며 그 자신의 분신으로서 자식의 대(代)가 끊어지지 않는 한 불멸이다. 모든 민족이 각기 같은 피부 색깔과 생김새, 성질 등의 특징이 변하지 않고 내림해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천하만물을 탄생시킨 하늘의 이치는 지극한 사랑이 근본이다. 그것은 순백(純白)으로 묘사되는 힌두교의 아트만(Atman)의 세계이요, 불교의 법(法)이요, 유교의 인(仁)이며, 도교의 도(道)에 해당된다.
필자가 몽골 한림원에서 종교철학 상(上)박사 학위를 받고난 뒤, 몽골 교수들에게 십이지상을 강의하던 중 토끼 머리를 한 관세음보살 대목에 이르러, 티벳과 같은 몽골의 라마(lama) 불교에서 채택하고 있는 탄트라(tantra) 섹스 수행법을 아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강의실에는 상당한 위치의 승려들도 몇 있었는데, 모두 아내를 두고 있는 그들도 나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아바로키테스바라(Avalokite-svara, 관세음보살)가 섹스하고 있는 모습의 불상(佛像)을 만들어 불단에 높이 올려놓고 거기에 왜 경배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역시 대답이 없었다.
인도 엘로라 아잔타의 수많은 석굴에는 부처를 모신 성전이 있는데, 그곳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섹스 체위까지 조각돼 있다. 왜 이런 조각들이 불상(佛像)과 함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또 남인도에 가면 거대한 바위로 여성의 성기를 조각해놓고 그 위에 아름드리 남성의 성기를 꽂아 남녀간 교합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재현한 것도 있다. 인도인들은 그곳에 꽃을 뿌리고 합장하여 탑돌이하듯 여러 바퀴를 돌면서 고개숙여 경배한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그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한다. 이는 남녀의 성기를 천지창조의 지극한 사랑의 본모습으로 인식하고, 여성의 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정액의 구멍을 모든 생명의 근원이자 무위(無爲)의 덕을 베푸는 하늘의 문이라 생각하는 인도인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그리고 섹스 행위 자체를 추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지극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육신이 이끄는 애욕에만 치우쳐왔기 때문에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추하게 느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불단에 놓인 섹스하는 신상(神像)이 관세음보살이라 하였더니 기겁을 하며 부정하려 했다. 관세음보살을 그저 자비로운 구원의 신으로만 믿어온 마음도 마음이려니와 사랑의 본성을 모르고 무조건 터부(Taboo)시 하려 들기 때문이다.
여하튼 섹스는 무한한 사랑과 덕으로부터 시작된 천지창조의 이치를 따르는 신성(神性)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유념하면, 섹스 신상의 교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랑이란 말도 한번 짚어보기로 한다. 사랑은 우리 한민족의 토종언어로, 보편적인 러브(love)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우리 말은 소리글자이자 뜻글자이기 때문에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데, ‘사랑’이란 말에서 ‘사’는 물이자 음기(陰氣)이며 ‘랑’은 태양의 빛이라는 뜻인 ‘라’의 변음으로 빛이고 양기(陽氣)다. 결국 물과 빛의 합성어인 사랑은 결국 정액이요, 생명의 질이며, 순수한 본성 자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사랑한다는 말은 크게 보아 바라는 바 없이 무한한 덕을 베푸는 것이며, 이성 사이에 있어서는 정액의 결합 내지 생명을 너에게 준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사랑 타령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좀 곱씹어봐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정액은 모든 것을 포괄한 생명의 기운임이 분명하므로, 정액을 함부로 낭비하는 것은 자신의 귀중한 정기(精氣)를 허공에 흩어놓는 어리석은 짓이며, 사랑의 의미를 훼손하여 도의 근본을 깨뜨리는 무질서라 하겠다.
그래서 붓다는 사랑이 없는 간음보다는 차라리 벌겋게 달아오른 화로를 끌어안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예수는 음욕한 마음을 네 눈이 품게 하였으면 눈을 빼버리라는 극단적인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로 보아 도의 순수함을 어지럽히고 생명의 기운을 예사롭게 흩뜨려놓는 것이 얼마나 그릇된 행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어찌되었건 애욕을 참지 못하는 기질에다 배속시킨 토끼는 어린 아이와 여린 새싹처럼 순진무구한 짐승이면서도, 색기(色氣)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질 만큼 시도 때도 없이 섹스를 즐기고 수시로 새끼를 낳는 짐승이다.
사람이 색을 밝히는 것도 토끼의 그런 생명 인자가 몸 속을 흐르고 있다는 증거이며, 관세음보살이 토끼 얼굴에 도끼를 손에 들고 있는 것도 인간의 그릇된 애욕을 상징하면서 기필코 끊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필자는 ‘소설 도덕경’을 집필하면서 섹스수행법을 기술하였는데, 육신의 애욕 때문에 허물어져가는 한 인간의 이야기와 사랑의 화합으로 생명을 보존하는 수행법을 제시한 바 있다.

용띠 - 용솟음치는 생명기운
다섯째 띠는 용이며, 진(辰)이라 한다. 시간으로는 아침나절인 7시부터 9시에 배치되고, 동쪽의 끝 방위에 위치하며, 봄기운이 한창 약동하는 음력 3월에 배속된다. 음력 3월 산과 들에서 아지랑이가 불꽃처럼 이글거리면서 일제히 타오르는 것처럼, 자연계 모든 생명의 기운이 힘차게 솟아오르는 기상을 상상하면 흡사 용의 형상과 닮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초목에서 여린 잎사귀가 피어나고 성미가 급한 꽃은 망울을 터뜨리는 때인 것이다.
이때 청년기에 접어든 인간은 드높은 야망에 불타고 화려한 이상을 동경하며 거칠 것 없이 꿈을 키워나간다. 어변룡(魚變龍)이라 하였듯이, 물고기가 용이 되어 겁없이 빗줄기를 타고 하늘로 뛰어오르는 것처럼 욱일승천하고 싶은 욕망이 지나치게 솟구치는 기질이 진(辰) 속에 담겨 있다. 따라서 독선과 아집이 강하게 나타나고 잘난 체하여 항상 남보다 앞서가려 하므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향이 있다.
동양인이 생각하는 용은 서구의 드래곤과는 달리 실체가 없는 상상의 동물이다. 그럼에도 인간으로서 최고의 지위에 도달한 자에게 부여되는 용의 형상은 어찌보면 여러 생명의 모습 중 특징 있는 하나씩을 골고루 갖춘 괴이한 형상이라 할 수 있다.
긴 몸통은 물고기와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파충류를 대표하고, 두 뿔은 소나 양과 같은 순진한 짐승에 비교될 수 있으며, 흉측한 입은 포악한 맹수에 상징되며, 발가락은 하늘을 나는 새가 되고, 수염은 초목에 비유될 수 있다. 그리고 전체적인 얼굴 모양은 잡귀를 물리친다는 불교의 사대신장(四大神將)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변화무쌍한 성질은 인간을 닮았고, 입에 문 여의주는 진리를 뜻하여 천지만물의 본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동양인의 용은 모든 생명의 기운이 힘차게 승천하는 기상을 뭉뚱그려서 표출해낸 상상의 동물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 용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신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고대 인도인들이 코브라 같은 뱀을 숭상하던 토템신앙에서 회자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붓다가야의 보리수 근처에 큰 연못이 하나 있고 그 가운데서 명상하는 붓다의 머리 위에 거대한 코브라가 우산처럼 목을 펼친 형상의 조각품이 있다. 이것은 깨달음을 얻은 붓다에게 햇빛과 비바람을 막아주고 삿된 것들의 침범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탄트라의 수행법에서 사람의 척추에 길게 늘어진 용을 볼 수가 있다. 용의 입은 사람의 인당(두 눈썹 사이)에서 여의주를 빛내고 있고, 몸통은 척추 독맥을 따라 내려가며 꼬리는 명문 속으로 들어가서 두 신장 가운데 잠겨 있다. 이 수련은 몸 속의 사기(邪氣)를 제거하여 병을 낳게 하고, 업을 멸하며, 인당에 있는 제3의 눈으로 만물을 꿰뚫어볼 수 있다고 한다.
용의 머리에다 한 손에는 여의주를,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관세음보살상도 이 수련의 의미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육체에 조건지어진 욕망의 사기(邪氣)가 거침없이 타오르는 것을 사그라들게 함으로써 열반에 이르러 진리를 증폭하게 하는 형상이라 하겠다.
사실 사주팔자에 있는 용띠 진(辰)은 높이 타오르고 싶은 성격도 성격이지만, 여러 가지 생명의 기운이 혼잡된 기질이고, 또 물의 창고라고 해석되는 만큼 몸이 습하고 피부가 곱지 못하며 기이한 재난을 겪게 된다.
특히 진(辰)은 위장의 기질을 나타낸 것이므로, 비만 체질이기 쉽고 심하면 위험한 병이 올 수가 있다.

뱀띠 - 현실적 욕망에 탐닉
여섯째 띠는 뱀이며, 이것을 사(巳)라 한다. 아침이 물러가고 태양이 높이 솟아오른 오전 9시에서 11시에 해당된다. 남쪽 방위의 첫머리로 여름이 시작되는 음력 4월,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나서 외형적으로 완전한 골격을 갖추고 성숙한 생명이 무르익어 가는 때다.
초목은 부지런히 뿌리를 벋어 잎사귀와 꽃을 가꾸고, 동물은 먹이를 찾아 활발하게 산야를 누비며, 청년기를 보내고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인간은 욱일 승천하던 기운을 꺾고 사회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당장의 목표는 뱃속을 채우고 편히 쉴 수 있는 의식주(衣食住)에 골몰해야 하고, 그 다음은 지위와 부를 창출하는데 심신을 바치게 된다. 그래서 늘 몸과 마음이 조급하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한다. 감성도 풍부하여 뛰어난 웅변술이 있다. 그러나 아직 정서적으로 불안하여 우유부단한 면이 있고,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있는 성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뱀은 끝내 용이 되지 못하고 일생을 수고롭게 배로 기어다녀야 하고, 작은 구멍이라도 찾아서 배를 채워야 하는 짐승이다. 그런가 하면 배가 부르면 한가롭게 똬리를 틀고 더는 먹을 것에 욕심내지 않고 배가 고프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나무를 유연하게 타오르며 장애물이 있으면 비켜갈 줄 알고 항상 몸을 낮추어 숨겨서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다가 부닥치는 장애물을 피해야 할 때도 되돌아설 줄 모르기에 땅꾼의 그물에 잡혀서 죽음을 맞이하고, 날쌔게 먹이를 잡아채는 두 가닥 혓바닥은 혐오스럽기도 하다.
이를 인간으로 비유해보면, 청년 시절의 구름잡는 용꿈에서 깨어나 사회에서 현실적 욕망의 배를 채우기 위해 분주한 중년이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뱀처럼 때로는 지혜롭게 몸을 낮추려 하지 않고 교만하게 자신을 드러내려 하며, 장애가 있으면 비켜갈 줄 아는 뱀의 지혜가 필요함에도 교묘한 술수로 타인을 넘어뜨리려 한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은 후에도 뱀처럼 쉬려 하지 않고 더 큰 것을 노리니 그 욕심은 한도 없고 끝도 없다.
한편으로 장애물이 있으면 비켜갈 줄은 알되 돌아설 줄 모르므로 땅꾼에 잡혀죽는 뱀처럼, 인간 역시 한계를 알 수 없는 욕심에 허덕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또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뱀의 두 가닥 혀와 같이 한 입으로 여러 가지 꾀를 부리는 말솜씨로 먹이를 낚아챈다. 물질에 종속된 인간의 허상을 뱀의 혓바닥이 잘 상징해준다.
이처럼 뱀은 이중성을 띠고 있다. 그래서인지 팔자에 있는 사(巳)는 겉보기에 예의가 바르면서도 방종하며, 타인을 불쌍히 여기지만 이기적인 속내를 엿보게 한다.
그리고 남을 사랑하지 않으면 미워해야 하는, 인덕이 없는 기질이며, 충성스러운 듯하면서도 반골의 특성이 나타나서 반항하고 거역하는 성격이 있다.

말띠 - 부와 지배를 상징
일곱째 띠는 말이며, 오(午)라 한다. 중천에 태양이 높이 솟아 대지에 뜨겁게 내리쬐는 정오에 해당되는 오는 정남쪽 방위에 위치하고 음력 5월,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을 의미한다.
꽃은 시들어 떨어졌으나 짙게 푸른 초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장년이 된 인간은 부지런히 축재하고 사회적 명성을 쌓아온 결과 마치 말 위에 높이 앉은 늠름한 장수처럼 권위와 위엄이 드높은 기상이다.
그런데 오(午)의 기질은 불꽃 같은 화기(火氣)로 처음 자(子)에서 잉태된 양기(陽氣)가 최고조에 달해 있는 분기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하지(夏至)가 되는데, 음기와 양기가 교차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뜨거운 열기 속을 파고든 음기는 마치 개미가 자기 체중의 수십배나 되는 먹이를 밀어내는 것처럼, 제자리에 안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양기를 밀어붙이고 미워한다.
사람의 성질도 이와 같아서, 초라하게 보이기 싫어하는 허세와 움켜쥔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시기하고 의심이 많으며 눈치가 빠르다.
또 장년의 나이답게 의젓한 겉모습과는 달리 조급해지고 생각이 얕으며 담력도 약해진다.
뿐만 아니라 육신의 쇠퇴기를 맞아 가끔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왕성한 기상과는 달리 혼자 의기가 소침해져서 큰 일에 겁을 낸다. 하지만 인생의 열매를 더욱 풍성하고 견고하게 맺기 위해 더 큰 야망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말은 인간의 그런 욕심을 상징하며, 청운의 꿈을 이루고 높이 앉아 자신의 위대성을 뽐내는 교만의 도구이며, 천하를 누비고 정복하여 군림하려 드는 끝없는 욕망을 상징한다.
힌두교의 인드라(Indra) 신이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하늘을 날면서 악을 쳐부수고 인간에게 행운을 내려준다는 신화도 있거니와, 중국 고대의 지배자인 황제도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에 높이 앉아 천하를 순시하며 탐관오리를 응징하고 백성들의 안위를 보살폈다고 하듯이 말은 치화(治化)의 법도에 귀중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또 전쟁에 승리할 수 있는 최고의 힘의 바탕이었다.
그러므로 말은 음과 양이 교차하는 힘의 대결과 쇠퇴기를 맞아 최고의 결실을 맺고자 하는 기상처럼 지치면 바꿔타고 새롭게 비상하려는 욕망, 그리고 성역의 확보와 지배 내지 부와 명예 등을 상징하고, 인드라 신과 고대의 황제처럼 덕을 베푸는 상징성도 함께 갖는다.
여러 짐승 중에서 말은 두뇌가 뛰어나고 염치를 아는 짐승으로, 사촌까지 알아보고 성 관계를 맺지 않는 특성이 있다.
성(性)에 대해서는 토끼 묘(卯)에서 충분히 설명했듯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도덕의 하나이며 자연계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는 덕목의 하나다. 따라서 근친상간도 마다하지 않는 인간에게는 말이 좋은 본보기가 될 터다.
재미있는 것은 말이 색욕의 동물은 아니지만 성기능이 탁월한 짐승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팔자에 오(午)가 있으면 대단한 정력가임을 암시한다.

양띠 - 속죄와 종교심
여덟째 띠는 양이며, 이것을 미(未)라 한다. 정오에 내리쬐던 태양의 열기가 땅을 데워서 하루 중 가장 무더운 오후 1시부터 3시까지에 배속된다. 남쪽 방위의 끝이며, 여름이 막바지에 이른 음력 6월이다. 뜨거운 열기에 맺은 열매가 제 모양을 갖추고 초목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굳어졌으며, 인간은 60대 늙음에 접어든 때다.
불꽃이 사그라들기 직전에 힘차게 한 번 솟구치듯, 양기가 기승을 부리는 것 같아도 음기가 세력을 더해 가므로 예전의 기상을 발휘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미(未)의 기질은 허세만 있지 실속이 없으며 무절제하고 나태하며 공상적인 성격으로 변한다. 그리고 흐르는 음기 때문에 신경질적이면서 화려함을 동경하고, 문학과 철학을 좋아하는 심성이기도 하다.
이런 성격은 성장을 멈추고 인생의 결실을 맺으며 늙어가는 심적 변화 현상으로, 젊은 날의 패기는 사라지고 지난날을 회고하는 가운데 때때로 죽음을 의식하고 회한에 젖기도 하는데서 비롯된다.
일찍이 종교를 거부하고 저 잘난 기분에 도취되어 있던 사람도 문득 종교에 귀의하고 싶은 마음이 찾아들기도 하는데, 세속의 그림자에 묻혀 왔던 본성이 중생의 허울을 걷어내려 함이며, 신에게 의탁함으로써 목숨을 오래 보존하고 싶은 회한의 발로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마음이 동시에 존재한다. 하나는 순백의 영혼이 무한한 사랑의 빛으로 덕을 베풀고자 하는 불멸의 본성 진리이며, 또 하나는 한시도 본성에 고요히 머무르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세속의 인연을 찾아가서 욕심을 채우는 마음이다.
이 두 가지 마음 사이에는 욕망을 좇는 허상의 마음을 돌이켜서 본성 진리에 머물도록 훈계하는 애틋한 모성의 마음이 오묘하게 존재한다. 이것을 양심의 소리라 한다.
자비와 구원의 신으로 상징되는 관세음보살의 화신(化身) 중에 부처의 어머니로 묘사되는 준제보살이란 이름의 신이 있는데, 바로 본성과 욕망의 두 가지 마음 틈새에 있는 양심의 소리를 신격화한 것이다.
필자는 아직 이 준제보살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하나같이 괴이한 언어수단을 빌려 얼버무리고 넘어가는데, 구복적 신앙심으로 관세음보살을 경배의 대상인 실존의 신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체 중생이 부처라는 가르침 속에서 사람을 공손히 받들고 덕을 베푸는 행은 아니하고 황금빛 돌상에만 부지런히 복을 비는 오늘날의 구복적 행위에 과연 종교다운 면모가 있는 것일까? 필자는 아직 부처가 어디다 빌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며,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읽었으되 자신의 상(像)을 세워 기도하라는 말을 어느 불경에서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부처상이 필요한 것은, 마치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진을 보면 새삼 그리워지듯이 오직 진리 그 자체였던 한 성인을 우러러 보면서 중생심을 깨치고자 함이며, 절하는 것도 황금빛 돌상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도의 위대한 성서 우파니샤드(Upa- nishad)의 기록과 만다라(mandara) 등 여러 가지 불교 관련 그림을 종합해보면, 인간의 가슴속에는 우주 본성으로서 유일신 또는 부처가 황금빛 불씨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아래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제단에 그윽한 향이 피워져 있는데, 거기 밑바닥에는 무릎을 꿇은 죄인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이 바로 하느님이요 부처이며, 동시에 욕망에 종속된 죄인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어디 가서 기도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뉘우치고 본성을 찾고자 무릎꿇고 수행 공부하는 것이 올바른 종교심이라 하겠다.
고대인들은 신에게 제사지낼 때, 여러 동물 중에서 순수함을 대표하는 양(羊)을 제물(祭物)로 사용하였다. 양은 속죄하는 착한 마음을 의미한다.
중국 은나라 시대에 한때 사람을 신 앞에 제물로 받치는 풍습이 있었다. 중생계의 생명을 모두 갖추고, 욕망의 덩어리로 뭉쳐진 죄인인 인간을 신에게 바쳐 자신들은 면죄될 수 있다는 귀족들의 잔인한 인식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예수의 살신성인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사악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 가슴속엔 본성 진리가 숨어 있고 악행을 훈계하는 양심이 틀림없이 존재한다. 따라서 환갑을 맞아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기 시작하는 이때, 그릇된 과거를 회고하여 양같이 착한 마음으로 속죄하며 종교심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래서인지 순수함의 상징인 양띠는 죽음의 살기(殺氣)가 흐르는 기질로 분류되기도 한다. 제물(祭物)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듯이, 팔자에 미(未)가 있으면 기이한 사고가 우려되며,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이 비명에 죽는 경우가 많다.

원숭이띠 - 참사람과 짐승의 중간
아홉째 띠는 원숭이이며, 신(申)이라 한다. 해가 서산으로 기우는 오후 3시부터 5시이며, 방위로는 서쪽이 시작되는 곳이고, 음력 7월 한여름의 무더운 기운이 사라지고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다. 과일이 여무는 이때, 사람은 이순에 가까운 나이가 된다.
자신의 생명을 이어갈 자손들이 푸른 과일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거기에서 남은 인생의 즐거움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인생의 결실을 맺은 때라 늘 마음이 분주하고 근심 걱정이 많아지며, 아이처럼 순진하다가도 독선적인 성질이 나타나고, 이유없는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음습한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졌으므로 고독한 심성을 보이며 잘 웃기도 하고 괴팍하게 행동하면서 밖으로 나돌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늙어감을 어쩌랴! 육신은 굳어져서 마음만 바쁘지 움직이기 싫어진다. 그래도 아직 익지 못한 과일처럼 세속의 욕망을 다 채우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서 더욱 얻은 것을 놓지 않으려 하고 더 가지려 드는 턱없는 야심을 드러낸다.
양띠에서 양(羊)을 신 앞에 제물로 바치듯 수없이 업을 쌓아온 젊은 날의 중생심을 본성에 귀의시켜 착하게 속죄도 하였으나, 아직도 속세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오히려 더욱 중생심에 집착하려 하므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미완성의 인간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수반인(半獸半人)의 대표적 짐승 원숭이가 배속되었거니와, 형상은 사람이되 그 마음은 짐승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한 것이다.
중국 사대기서(四大奇書)중 하나인 ‘서유기(西遊記)’는 반수반인 손오공이 승(僧)을 호위하고 서쪽으로 불경을 가지러 가는 내용이다.
‘서유기’는 고대 인도의 설화에서 따온 것이라 하는데, 이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하고 황당한 얘깃거리만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손오공이 법사(法師)를 호위하기 전에는 구름을 마음대로 타고 여의봉을 휘두르며 천상의 신들까지 때려 뉘고 제천왕이 되어 천도복숭아까지 멋대로 따먹던 망나니였다. 그것이 관세음보살의 분노를 사서 굴속에 갇혔다가 비로소 삼장법사를 호위하도록 자비를 베풀었던 것이다. 그러나 함부로 날뛰는 천성을 버리지 못하므로 말을 안 들으면 머리를 죄서 고통을 주는 쇠올가미를 씌웠다. 손오공은 그것이 두려워서 마귀를 물리치고 서쪽에서 불경을 얻을 수 있도록 끝까지 법사를 호위하였다는 내용이다.
인간의 행실을 참으로 절묘하게 나타낸 소설이라 하겠다. 손오공은 고요히 본성에 머물지 못하고 제멋대로 날뛰는 마음이며, 휘두르는 여의봉은 본성에 의지해서 천상까지 마음대로 누비고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망나니와 같은 마음을 훈계하는 또 다른 마음, 즉 불모(佛母)로 설명되는 관세음보살이 손오공의 머리에 쇠올가미를 채우듯, 양심이 끝까지 그리고 단단하게 오염된 마음을 붙들어서 법사를 상징하는 본성을 따르게 하여 불법을 얻어서 깨닫게 하였던 것이다.
서쪽은 역학에서 순백의 금(金)을 뜻하거니와 불교에서는 서방정토라 하여 천국에 해당되며 인간의 마음으로는 본심을 얻은 열반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손오공이 서쪽으로 간 것은 본성을 깨달아서 들어감이며, 곧 진리니 불경을 얻었다는 것은 깨달았다는 뜻이 된다.
‘서유기’의 조연급인 사오정은 용의 화신이므로 일체 중생심을 상징하고 저팔계는 돼지이므로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따라서 사오정과 저팔계의 대표자가 손오공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이 이순에 반수반인일 수밖에 없는 중생심을 버리고 손오공처럼 발광하는 망념(妄念)을 본성 앞에 기어코 붙들어 놓으면 죽기 전에 능히 업을 소멸하고 고통없는 불멸의 열반에 들어서 대각(大覺)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이다.

닭띠 - 이별의 기운
열째 띠는 닭이며, 이것을 유(酉)라 한다. 해가 저물어가고 땅거미가 내리는 초저녁 5시부터 7시까지가 닭띠 시간이다. 방위는 정서쪽이고, 가을의 중심인 음력 8월에 해당된다.
오곡을 거두어들이고 익은 열매가 몸체와 분리되는 가을이기에 이별의 기운이 을씨년스러운 이때, 인간은 생을 마감하고 죽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이 기질을 타고난 사람은 자주 감상에 젖고 눈물이 많으며, 심하게 괴로워하다가도 철없는 아이처럼 웃기도 잘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변덕이 있다. 하지만 예민한 감수성만큼 뛰어난 문학성이 있으며 철학적 사고도 깊다.
유(酉)를 닭띠라 한 것도 이별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본래 유(酉)는 서방정토로 열반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죽음에 이른 인간은 여전히 본성을 깊이 감추고 중생심으로 죽어가기에 닭에 비유되는 것이다.
닭은 예로부터 땅의 소식을 하늘에 전하는 짐승으로 인식되어 왔다. 결혼식 때 천상의 조상과 신에게 소식을 알리는 일을 지금도 담당하고 있거니와 죽은 후 혼백을 천신과 지신에게 알리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닭의 습성은 날이 저물면 즉시 둥지로 들어가고 해가 뜨기 직전에 홰를 쳐서 세상이 밝아옴을 가장 먼저 일깨운다. 홰를 치는 것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활발하게 활동하려는 몸부림으로, 사람이 죽은 후 긴 어둠을 거쳐 그 영혼이 다시 태어나서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게 됨을 의미한다.
어둠은 죽음이요, 둥지는 죽음 이후에 쉬어야 할 한정된 공간이며 울음은 새벽잠을 깨우는 것이니 윤회하는 중생의 서글픈 삶을 깨닫게 한다. 다시 말해서 초목이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서 가을에 시들어 낙엽져 내리면 긴 겨울동안 끈질긴 생명의 기운을 머금고 있다가 봄에 다시 홰를 치듯 기운을 되살려서 싹을 틔운다. 서글프지만 인간의 육신도 윤회하는 영혼을 따라 영원히 초월할 수 없어 띠를 두르듯 열두 짐승의 속성을 밟는다고 하겠다.
닭의 또다른 습성은 쥐와 토끼처럼 색을 밝히며 수많은 알을 생산하는 것이다. 인간이 죽기 전에 자신의 분신인 자손을 남겨두는 것과 같다.

개띠 - 귀신을 제압한다
열하나 째는 개이며, 술(戌)이라 한다. 어둠이 짙어진 밤 7시부터 9시에 배속된 술(戌)은 서쪽 끝 방 위에 자리하고 가을의 마지막이며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이라 하겠다.
초목의 열매는 땅에 떨어져 흙에 묻혀 썩고, 인간의 육신도 흙으로 돌아간다. 비록 열매는 썩어 없어지지만 그 씨앗은 봄에 다시 태어날 생명의 기운을 머금었고 흙이 된 인간의 주검도 혼(魂)은 하늘에서 오제(五帝)의 영역에 갇히고, 백(魄)은 땅으로 스며들어 오령(五靈)에 귀속되어 인연을 만나면 다시 태어나게 된다.
오제란 우주만물의 구성 요소가 되는 오행(五行)의 기운을 주관하는 힘의 원천을 신으로 인격화한 한민족 사상이 밴 말이다. 즉 다섯 가지 기를 내뿜는 천기(天氣)의 근원을 말하는데, 생명의 씨앗을 심는 자로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 불린다.
사람의 혼은 진흙속의 연뿌리처럼 순백의 본성이 오염된 마음에 감싸여 있다. 따라서 오염된 마음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오제의 카테고리에 머물다가 인연을 만나면 백(魄)이 주관하는 또다른 육신과 결합해서 모습을 갖추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제는 구원과 심판의 신으로서 불교에서는 오륜(五輪)이라 하고, 무속에서는 오륜대왕(五輪大王)이라 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굿을 한다.
백(魄)을 오령이라 한 것 역시 우리 민족의 창조사상인데, 만물의 형상을 갖추게 하는 다섯 가지 땅의 근원적인 기질을 말한 것으로,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으로 묘사된다. 마음이 오염된 정도에 따라 그에 걸맞은 혼과 인연을 맺고 모습을 갖추게 한다.
아무튼 개띠 술(戌)은 직간접으로 신의 세계와 관련이 있다. 술은 죽음 이후의 백(魄)을 의미하는 부호로, 만물의 형상을 갖출 수 있는 기운을 모두 끌어안은 땅의 정령이라 하겠다. 따라서 온갖 잡스러운 귀신의 집이라 할 수도 있으므로, 귀신을 볼 수 있고 지킨다는 개로 하여금 귀(鬼)가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귀신이 나돈다는 음습한 집에 사나운 개를 키우면 귀신이 조용히 물러가지만 유약한 개는 귀신을 감당하지 못해서 집을 나가거나 죽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십이지상에서 개머리로 화신(化身)한 관세음보살이 한 손에는 도끼를 들고 또 한 손에는 칼을 짚고 있는 것에도 귀(鬼)의 발광을 위협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은 인간의 온갖 욕망이 일으키는 번뇌를 잠재우는 오묘한 마음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돼지띠 - 번뇌의 집합처
열둘째 띠는 돼지이며, 이것을 해(亥)라 한다. 어두움이 가장 짙은 밤 9시부터 11시가 돼지띠 시간이며, 방위는 북쪽 첫머리이고, 계절은 겨울의 시작이 된다.
모든 생명이 물에서 나왔으므로 큰 바다에 비유되는 해(亥)는 만물의 혼(魂)이 빠짐없이 수장되어 있는 태초 이전의 암흑의 세계로 이 세상의 시작과 끝이 동시에 존재한다. 여기에서 한 개의 양기가 시생(始生)해 자(子)가 되고 축(丑)으로 발전해서 인(寅)에서 다시 태어나거니와 소우주로 축소된 여성의 오묘하고 순수한 자궁 속과 같다.
자궁(子宮)이란 말은 자식을 생산하는 궁궐이란 뜻인데 보통 아기집이라고도 하며, 만물의 집합체인 인간을 잉태시키는 신의 집과 같은 곳이다.
무수한 생명의 혼이 유영하는 음습한 기질의 해(亥)는 무궁무진한 변화의 기운이 흐르므로 유달리 번뇌가 많고 사회생활에 변동이 많다.
그리고 죽음의 세계에 갇힌 혼이기 때문에 한번 우울증에 빠지면 광적인 행동도 불사하며, 이런 기질 때문에 도사와 기인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모든 생명의 기질이 혼잡된 암흑이기 때문에 그만큼 신성(神性)을 오염시키는 중생심이 가득하다는 의미도 있다.
짐승들은 제각기 생긴 생김새와 성품대로 치우친 장(臟)기능을 가지고 있고 그 기능대로 특정한 음식을 먹어 생명을 유지한다.
그러나 돼지만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습성이 있다. 이는 인간의 잡식성과 다르지 않은데, 돼지의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간에게는 돼지와 같은 생명의 기운이 많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증거한다.
다만 사람은 처음부터 오장육부가 편협되지 않고 고루 갖추어져 있으나, 돼지는 먹고 소화시키는 기능만 발달해 있을 뿐 하늘을 향한 머리와 어디든 갈 수 있는 두 발과 마음껏 조화를 부릴 수 있는 두 손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먹지 못할 것이 없는 그 습성 하나에서 모든 생명의 기질을 다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온갖 잡기를 잡아먹는 심판자로서, 또 중생심을 다스리는 마음의 하나로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풍습 중에 아직도 건재한 고사(告祀) 의식(儀式)에서 제물의 주인공이 바로 돼지란 사실을 곰곰 생각해보면 잡귀를 물리치고 소원을 성취시켜주는 영험한 짐승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돼지란 ‘되어지다’의 준말이라 해석할 수 있다. 즉 만물이 해(亥)에서 되어져서 자(子) 축(丑) 인(寅)으로 탄생되고 사람의 일에서는 방해꾼을 물리치고 원하는 것을 ‘되어지게’ 한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그 외 돼지는 본래 검은색이므로 어두움과 죽음의 세계를 뜻하기도 하고 중생의 기질을 다 갖추고 있으므로 인간을 대신하는 속죄의 제물(祭物)로도 인식되었다.
운명 개조론
이로써 열두 띠에 대해서 대략 설명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사주팔자에 자신의 고유한 띠 코드가 부여돼 있다. 그런데 천지로부터 받은 기(氣) 성질을 사주팔자라는 방정식으로 해석할 수 있으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사주팔자에 드러난 자신의 띠의 기운에서 그릇된 성품을 스스로 알 수가 있고, 이를 고쳐서 평등하게 해야 한다는 인연심을 일으킬 수 있으며, 그것을 끝까지 닦으면 팔자의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
또 그리 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요 책임이라 하겠다. 흔히들 사람이 잘되고 못되는 것은 하늘의 뜻이니 순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순응이란 천도(天道)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지 그릇됨을 행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연에 의해서 태어난 팔자가 잘못되어 있으면 바꾸는 것이 순응이며 사주팔자를 그대로 따르면 역행이니 운명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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