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신드롬, 그 실체와 허구
가수 김현정의 'B형 남자'가 B형 남자들을 뚜껑 열리게 하는가 하면 'B형 남자친구'가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B형 CEO들이 많다는 통계조사가 화제가 되고 B형으로 인해 불거진 혈액형 신드롬은 서점가에서도 'B형 남자와 연애하기' '혈액형 비즈니스' '혈액형 사랑학' 같은 책들을 쏟아내도록 했다. 방송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혈액형 성격론을 무분별하게 재생산하고 있다. 편견의 범람이다. 사실 이러한 혈액형에 따른 성격의 판단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혈액형 성격학의 대가는 70년대 독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일본의 노미 마사히코와 노미 도시타카 부자로 알려져 있다. 혈액형 성격학은 혈액형 인간학이라고도 하는데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서양에는 A형, 동양에는 B형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러한 견해에 대해 일찍부터 일언지하에 부정했고 그들의 이론은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과학자들이 이러한 성격학에 대해 과학적인 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혈액형 유전 인자와 성격 유전 인자 사이의 상호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혈액 유전자 자체는 성격 형성과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다.
둘째, 혈액형 별로 염기서열이 다른 부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성격 자체가 많이 다르다는 지적은 가능성이 낮다고 한다. 예를 들어 A형과 B형의 경우 염기서열이 7개밖에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셋째, 단순히 몇 개의 유형으로 나눌 수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A형이라고 해도 AA형과 AO형이 있고 한국인은 AO형이 대부분이라는 주장이다.
이외에도 다른 주장이 있다. 동양의학에서는 체질에 따라 사람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제마의 경우에는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이 다르다고 했으며 다시 두 가지씩 나누어 여덟 가지 성격을 이야기했다. 또한 사람의 성격은 유전적인 특징뿐만 아니라 뇌구조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장도 있다.
여기에 후천적인 성격의 형성을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정신 분석의들은 소아기의 외상이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또한 사회계급주의에서는 사회경제적인 구조가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해 왔다.
일부에서는 혈액형에 대한 판단은 사주명리학과 같이 하나의 경험적 가능성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혈액형으로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그것은 대인관계의 불안에서 비롯된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형식적이고 복잡해진 반면 사람 관계에 대한 확실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지속적이고 깊은 관계 맺기가 힘든 상황이 벌어지면서 단번에 사람을 판단하는 버릇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셈이다.
문제는 오히려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이미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이렇다'는 견해에 따라 그렇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A형은 이러한 성격이라고 하면 A형의 성격은 그렇게 보인다. 어떤 사람을 잘 모를 때 혈액형을 물어보고 성격을 판단한다. 매우 위험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대개 혈액형에 따른 성격은 각 혈액형에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하나를 지적한다고 해도 크게 틀릴 일은 없는 셈이다.
좀 더 말하자면 혈액형 성격학이 선호되는 이유는 사람에 대한 판단기준이나 준거점이 없게 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합리적으로 고정된 인식체계인 스키마(Schema)에 가까워 보이지만 이것이 일방적으로 심해지면 편견이나 고정 관념이 된다.
즉, 사람의 성격을 그 사람과 겪어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멋대로 조합한 혈액형 성격론으로 이미 재단하고 그것에 끼워 맞추는 꼴이 된다. 이럴 때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협소한 인식만을 드러낸다.
더구나 성격은 바뀔 뿐만 아니라 많은 변수가 있으며 성격은 여러 가지 성향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매트릭스>식으로 "성격의 본질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묻고 싶다.
만약, 비즈니스에서 혈액형에 따른 성격의 장단점이 심화되면 자기 충족적 예언이나 자기 실패적 예언으로 혈액형 성격론에서 말하는 행동과 생각을 하게 된다.
때에 따라서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래야 성공하기 때문이다. 혈액형 성격론으로 사람의 성격을 미리 재단하다가는 선입견으로 연애에서 실패하고 서로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결국에는 혈액형 성격이 있다기보다는 혈액형 성격에 대한 견해가 그런 성격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모른다. 선입감이 아니라 겪어보고 판단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대개 "이러 이러하다" 보다 예외적인 것이 위기와 기회를 준다. 방송과 연예는 이러한 점의 지적보다는 영합하기에 급급한 '성격'을 보이고 있다.(사진은 영화 'B형 남자' 포스터)
글·김헌식(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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