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역학이야기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과 음양오행론의 기원

깡통박사 | 2017-09-30 08: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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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설과 5행설은 각각 독립적으로 발전했으나, 전국시대(戰國時代) 중엽에 하나의 사상체계로 통합되었다.

원래 음양은 산의 북쪽(응달)과 남쪽(양달)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뿐 만물을 형성하는 에너지적 원소로서의 의미를 가진 개념은 아니었으며, 또 실재하는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개념도 아니었다.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이르러 음양이 풍(風)·우(雨)·회(晦)·명(明)과 함께 천(天)의 6기(六氣) 가운데 하나로 취급되면서 비로소 음양은 실재하는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BC 3세기 전반 무렵에 천지만물의 생멸과 변화를 기(氣)의 모임과 흩어짐에 의해 설명하는 사고방식이 성립되면서, 이때부터 음양을 성질이 상반되는 2종류의 기로 설정하고, 음양 2기에 의해 천지자연의 운행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5행이란 수·화·목·금·토를 가리키며, BC 4세기초부터 그 개념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물자의 기본재가 상징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후 음양설과 결합하여 5종류의 기, 즉 우주에 편재하고 충만한 5가지의 에너지적 원소로 간주되었다.

음양설과 5행설을 통합하여 체계적인 음양오행설을 성립시킨 대표적인 학자는 추연(鄒衍)이다.

그는 음양의 기와 5행에서 발생하는 덕(德)의 소식(消息)이론으로 사물의 변화를 설명했는데, 그의 사상을 대표하는 학설로는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이 있다.

5덕이란 5행에서 발생한 5종류의 작용을 말하는 것으로, 오덕종시설에 따르면 천지가 나누어진 이래 5덕의 전이에는 일정한 기운이 있고, 거기에 적응한 정체(政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왕조의 제왕은 누구나 이 5행의 덕 가운데 하나를 갖추어 왕자가 되며, 모든 왕조는 5덕의 순서에 따라 흥망하게 된다.

그리고 5행의 상호관계는 토 - 목 - 금 - 화 - 수와 같이 각기 전자의 왕조를 이기고서 나타난다는 상승(相勝)과 순환의 법칙, 즉 상극설(相剋說)의 입장을 취했다.

그후 이 오덕종시설은 진한의 교체기를 거쳐 전한(前漢)의 정치적 안정기가 오면서 목 - 화 - 토 - 금 - 수로 차례차례 생성해간다는, 정권 선양(禪讓)의 형태를 취하는 상생설(相生說)로 변화했다.

그리고 진한대의 음양오행설은 〈여씨춘추 呂氏春秋〉 12기(十二紀)와 〈예기 禮記〉 월령(月令)에 보이는 시령설(時令說)로 발전되었다.

시령설은 사계절의 변화와 인간의 정사를 오행상생의 순환원리에 의해 설명하고, 다양한 인간사의 현상과 4시(時), 12월(月)의 자연현상을 각각 오행에 배당했다.

따라서 자연과 인간이 음양오행의 순환운동에 따르면 그 화평상태가 유지될 수 있으며, 거기에서 벗어나면 자연과 사회의 화평이 깨어진다고 했다.

또한 인간의 행위 가운데서는 특히 천자의 통치가 음양오행의 순환운동을 제대로 따름으로써 사회의 안녕과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고 했다.

한대에는 이러한 음양오행설이 유가와 도가를 포함한 모든 사상에 공통적인 세계관으로 받아들여지게 됨으로써 하나의 보편적인 사상으로 성행했다.

특히 동중서(董仲舒)는 음양오행설과 유교정치사상을 결합하여 천인감응(天人感應)과 휴상재이(休祥災異)의 사상을 완성했는데, 이 사상은 그후의 유교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동중서는 음양오행설에 의해 자연현상과 인사, 특히 군주의 정사가 대응관계에 있음을 강조하고, 따라서 군주의 통치는 '천'(天)에 순종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군주의 통치가 민생을 해치는 경우에는 음양오행의 부조화를 초래하게 되어 가뭄과 장마 등의 자연재해를 통한 '천'의 견책이 있게 되며, 혜성이나 지진의 발생 등의 괴이(怪異)를 통한 경고가 내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가 반성하지 않을 때는 천명을 바꾸어 그 국가를 멸망시킨다고 했다. 그러나 군주의 통치가 민생을 보호할 때는 보랏빛 구름이나 진기한 짐승이 출현하는 등의 상서(祥瑞)가 나타나게 된다고 했다.

그는 또 오행설을 응용하여 군주에게 외모, 언어, 보는 것, 듣는 것, 생각하는 것의 '5사'(五事)에 근신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같이 동중서의 재이설은 절대군주의 권위를 천의 권위에 의해 뒷받침하면서 절대군주의 올바른 통치를 촉구하는 정치사상이었다.

그러나 그후 유교가 국교화되어가면서 재이설은 점차 신비스러운 참위설(讖緯說)로 바뀌어갔다. 동중서에게는 과거 군주의 실정에 대한 견책으로 설명되던 재이가 참위설에서는 장래 발생할 사태의 예언, 특히 역성혁명에 의한 정권교체의 예언으로 바뀌었다.

그결과 참위설은 기존 왕조의 권위를 위협하면서 새로운 왕조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기능을 갖게 되었다.

한편 음양오행설은 자연과학의 영역, 특히 의학자의 이론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학에서는 인체의 내부와 자연계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즉 인체의 조직은 자연계의 음양오행에 적용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음양오행의 도식이 생리학의 도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예컨대 비장(脾臟)은 목, 폐(肺)는 화, 심장(心臟)은 토, 간(肝)은 금, 신장(腎臟)은 수에 배당하여 그 기능과 성질을 설명하는 식이다.

또 음양오행설에서는 사계절의 변화가 인간의 생리적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인체 내부의 5장(五臟)은 상호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 이론들을 취했다.

음양오행설의 전개과정에서 일어난 커다란 변화는 송대 성리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돈이는 음양오행을 태극과 관련지어 설명했는데, 그의 〈태극도설 太極圖說〉에 따르면 태극이 음양을 낳고 음양이 5행을 낳는다는 구도로 음양오행을 이해했다.

그는 5행을 5기로 파악하면서 5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라고 설명하여 음양 속에는 태극이, 5행 속에는 태극과 음양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리고 음양과 5행의 결합에 의하여 만물이 형성되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러한 〈태극도설〉의 내용은 그후 성리학의 이기론에서 태극이 이(理)로, 음양오행은 기(氣)로 해석되어, 이기 개념에 의한 만물의 생성과 운동을 설명하는 기초가 되었다.

오덕종시설에 의한 중국왕조의 변하는 형태(오행상극의 법칙)
진나라(진시황제):토(노란색)<-극<-하나라:목(푸른색)<-극<-은나라:금(흰색)<-주나라:화(붉은색)<-진나라:수(검은색)
 
 

내용출처 : 내 머리속+ 엠파스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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