乙 己 甲 戊 乾
亥 卯 子 戌 ...3대운
자월 갑목은 눈으로 보이는 형체가 아닙니다. 아직도 깊은 땅속에서 동면을 하고 있습니다. 동지이전에는 숨을 죽이고 고개까지 가누지 못하다가 동지를 지나면서 점차 고개를 가누기 시작하나 봅니다.
추상적이고 에로틱적인 환타지를 꿈꾸기도 합니다. 개그콘서트에 상상형제코너에서 그들의 개그 연기는 상상으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고, 가상적인 것으로 간접 경험하며 위안하기도 합니다.
추운 겨울에 세찬 눈보라가 치는 들녁에서 상상으로 마음만이라도 따뜻한 온돌과 모닥불 피워 놓고 손을 부비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이도 행복이고 훈훈한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기루와 같은 환상과 꿈은 마치 사진을 찍어놓고 뽀샵처리를 해 놓은 것과 같아서 100만화소와 같은 컬러시대에 흑백사진으로도 둔갑할 수 있고, 별나라에서 사진도 찍은듯 합니다.
자월에 갑목은 몽상가이기도 합니다. 마네킹이나 인형이 아무리 사람과 똑같다고는 하지만 온기나 생명은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도 꿩대신 닭으로 필요할 때도 있나 봅니다.
자월에 갑목은 섬세한 감성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존감과 같습니다. 춘절에 갑목이 거침없는 하이킥으로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라면 하절에 갑목은 폼에 살고 폼에 죽는 폼생품사와 같습니다.
추절에 갑목이 존재의 이유를 자각하고 달관되이 세상속에 부품으로 소비되는 것을 당연시한다면 동절에 갑목은 춥고 배고픈 마음이나 알아주고 교류하자는 말과 같습니다.
갑목이라는 육감적이고 본능적인 센스를 가진 네사람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절 갑목은 네 마음 내가 안다. 내 어찌 너의 아쉬움과 등가려운 것을 모를소냐하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춘절 갑목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래 가보는 거야 사랑은 느낌이 중요한지, 전율이 중요한지 짜릿한 흥분이 고통인지 기쁨인지 모르지만 가다보면 익숙해 질 수도 있습니다.
하절 갑목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모양새는 내야 하고 세팅은 해야 하나 봅니다. 있어야 할 것은 있어야하고 갖출 것은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그리도 절실한 숙명일 수도 있습니다.
추절 갑목은 이몸이 죽고 죽어 골백번 고쳐죽어도 목숨이 붙어있는한 님을 향한 일편단심 알아주는 이에게 목숨을 내놓은들 아까울게 없다하니 봉화산 골짜기에 몸을 투신하기도 하나 봅니다.
살아야 할지 죽어야 할지를 선택하는 것은 인간만의 특권인데 적어도 비굴하게 사느니 꿋꿋한 의식과 정신으로 영원히 살고자 하는 것이 결국 삶은 죽음이 자연의 일부분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자월 갑목이 우째 이리 저리 돌고 도는지 딴청한 티가 납니다. 아침먹고 잠시 쓴다는 것이 점심먹고 와서 더해지고 있으니 아마도 두서가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자월 갑목은 풋풋한 마음과 마음이 어우러져 마음만이라도 푸근하고 따뜻했으면 하는 온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차 미래를 기약하기 위하여 마음에 위안을 갖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월 자체로 쓰리쿠션을 돌려 설명해야 하는데 갑목으로 쓰리쿠션을 돌리면 이도 혼돈인데 여튼 하여튼 갑목은 우찌되었든 자신의 형체를 보존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과도 같습니다.
자월이라는 편지풍파를 거치고 인고의 고통속에서 생명을 유지 보존하고자 하는 갑목의 무한한 생명력은 끊질길 생명력이고 눈속에 피어나는 눈꽃인지 매화꽃인지 순정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갑목을 마음에 품었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도하려는 도전적인 의지이고, 그들이 이것을 한낱 찌라시 종이라 버릴지라도 나는 한장의 찌라시를 끼우는 마음과 같습니다.
찌라시를 보는 것은 을목이고 찌라시의 문구를 보는 것이 갑목인데 우째 이리 왔다갔다 음정박자를 못맞추는 것은 배가 부르고 등이 따시면 인간은 자고로 태만해지고 나태해지기도 하나 봅니다.
자월에 갑목이 어디 있어야 목극토를 하여 소토를 하는데 보이지 않는 갑목이 목극토를 한다는 것은 땅속에 묻어서 생명을 존속할뿐 밖에서 온기가 더해져야 고개를 내밀기도 하나 봅니다.
자월에 금극목이라는 것도 어디 갑목이 있어야 경금으로 벽갑을 해서 모양을 다듬기라도 하겠는데 보이지 않으니 그져 마음만 쓸어담고 쓸어담아 간결하게 거듭 연결되고 이어지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자월에 갑목이 인덕이라는 것은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추운 겨울에 날로 보다 따뜻한 정성과 같아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게 하는 매개가 되고 살아가는 이유가 되나 봅니다.
사람은 그져 배가 고프고 추워야 악착같아 지는데 밥 한공기에 이러한 포만감이 잠시 행복하기도, 한 없이 송구스럽기도 하니 양심이라는 것이 이제 곡기를 줄여야 하는 신호를 줍니다.
출처 : 자월 갑목의 인덕이란?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