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인상생이 잘된 여자의 운명이 행복한가를 묻는다면 한마디로 답변하기 어렵습니다.
관인상생이 잘된 사람이 재테크를 잘한다면 그때 그때 다름입니다.
정관 정인 일간으로 잘 이어지는 사주가 있어 관인상생된 잘 된 여자분은
그져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주부일 뿐입니다.
관성이 인성을 잘 생하는 여자분은 남편의 사랑과 관심을 독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과하면 집착과 스토커지 좋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적절함을 유지해야 좋은 것입니다.
인성이 일간을 잘 생한 여자분은 남편에게 사랑받기 위한 노력을 하겠지요.
이는 스스로 사랑을 하고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을 갖춘 것이니 여자분이 더 좋아하는 경우죠.
남자분의 경우 여자가 인성이 일간을 생한 여자분에게
행여 속사정을 털어 놓거나 싸인을 보내면 발목을 잡힐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관심이 사랑이 되고 사랑이 꼭 필요한 애증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보면.
상대적인 논리인데
관인상생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남녀의 사랑을 한눈에 단언하기는 힘든법입니다.
관이 인성을 생하는 것은 남자의 본능이고 의무입니다.
인성이 일간을 생하는 것은 남자입장에서 보면 반응이고 삘과도 같죠.
관이 인성만 생하고 일간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은 지극정성을 보여야 합니다.
무인성한 여자가 사랑받을 권리나 의무가 없다는 것은 아실 것입니다.
남자에게 여자로 인정받지 못하니 남는 것도 없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재생관하지 않고 관인상생만 하면 결국 남자의 등골을 빼먹는 여자가 되는데
이는 살아보면 알고 시간이 지나야 체감되는 경우이니 오래살지 않고는 알수 없는 애기죠.
관설인지, 관인상생인지를 보는 것은
결국 재생관의 여부가 결정되는 사안입니다.
여자가 간지로 관인상생하는 경우가 종종있는데...
예를 들어 갑목이 신축으로 재생관하는 경우는 남자는 당연한 권리 행사입니다.
여자분은 남편을 위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남자분은 아내의 내조가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생관이 잘 된 분은 스스로는 그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상생이 잘 된 것은 복덕을 논하는 것인데 이는 이미 몸에 배인 습성이 배여있습니다.
이를 굳이 거론할 가치조차 없이 살아가는 기반이 됩니다.
인간사는 상극해야 아픈기억과 상처를 상기하게 되나 봅니다.
재가 인을 냅다 재극인하고 관이 일간을 극하던지 해야 기억하고 인식합니다.
재극인하면 현실이 내마음을 몰라준다 하니 눈물이 나겠지요.
재극인하면 억울한 마음에 현실과 마음과 괴리감을 느껴 아프겠지요.
하픔이 나고, 몸이 이완되고, 고향의 향수가 그립게 됩니다.
관이 일간을 극하여 균형이 깨지면 어떨까요.
균형이 균등하면 서로 존중하고 서로 인정하니 평합니다.
그러나 균형이 무너지면 슬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관>일간이 되면 부담스러운 남편의 요구를 따라야 하는 아픔이겠지요.
관<일간이 되면 답답한 남편 사람답게 살게 하려고 이또한 힘들다 하겠지요.
누구를 위해 사는 것인지는 모르나 균형은 모든 음양으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상대가 만족하지 않는다면 잘 한것이 아니죠.
년초에 새해 복많이 받으라는 문자 메세지가 남발합니다.
복을 많이 받으라는 것은 상식적인 인사방식이니 나쁘다 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실한 사람에게 복 많이 받으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가 되라는 의미로 들려질 수 있습니다.
복은 노력없이 얻어지는 공짜와도 같은 것인데...
행여나 혹시나 하며 사는 분들에게는 당연 좋은 인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력한 만큼 성실하게 일한만큼 벌고 살고자 하는 분께는 욕이 될 수 있습니다.
복은 사치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덕을 받으셔요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덕은 흔히 베푸는 아량속에 행복을 느끼고 살라 합니다.
출처 : 관인상생 - blog.daum.net/024614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