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력: 1984년 5월 14일
음/평: 1984년 4월 14일 남자
시 일 월 년
@ 戊 己 甲
@ 申 巳 子
戊 丁 丙 乙 甲 癸 壬 辛 庚 대운: 순행
寅 丑 子 亥 戌 酉 申 未 午
87 77 67 57 47 37 27 17 7.7
대운 시작: 7세 7월 22일
현재 나이: 27 세 (2010년 경인년)
현재 대운: 未
마크 엘리엇 저커버그(영어: Mark Elliot Zuckerberg, 1984년 5월 14일 ~ )는 미국의 기업인이다. 페이스북의 공동 설립자로 잘 알려져 있다. 하버드 대학교 학부 재학 중, 같은 대학 친구였들이었던 더스틴 모스코비츠, 에두아르도 세버린, 크리스 휴즈와 함께 페이스북을 설립하였다.[2]
[편집] 생애
저커버그는 미국 뉴욕 주 화이트 플레인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에드워드(Edward)는 치과 의사였으며 어머니 캐런(Karen)은 정신과 의사였다.[3] 그는 세 명의 여자 형제들인 랜디(Randi), 도나(Donna), 애리얼(Arielle)과 함께 뉴욕 주 돕스페리에서 자랐다.[3] 그는 유대교 교육을 받았으며, 13세 때는 유대교 성인식의 일종인 바르 미츠바 또한 거쳤다.[4][5]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로는 그는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밝혀 왔다.[5][6]
저커버그는 중학교 시절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아버지로부터 아타리 BASIC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으며, 이후 1995년 경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데이비드 뉴먼(David Newman)으로부터 개인 지도를 받았다. 또한 1990년대 중반에 집 근처 머시 칼리지(Mercy College)의 대학원에서 관련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다.[3] 그는 프로그래밍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특히 통신 관련 툴을 다루거나 게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아버지 사무실 직원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애플리케이션을 고안하기도 했으며, 리스크 게임을 PC 버전으로 만들기도 했다.
아즐리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그는 서양고전학(classics)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후 3학년 때 필립스 엑세터 아카데미로 학교를 옮긴 그는 과학(수학, 천문학 및 물리학)과 서양고전 연구(Classical studies) 과목(그는 그의 대학 입학 원서에서 그가 영어 외에 읽고 쓸 줄 아는 언어로 프랑스어 히브리어,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를 꼽았다)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상을 받았으며, 펜싱팀의 주장을 지냈다.[7][8][9] 그는 고등학교 재학 중에 인텔리전트 미디어 그룹(Intelligent Media Group)이라는 회사에 고용되어 시냅스 미디어 플레이어(Synapse Media Player)를 제작했다. 이것은 인공지능을 사용하여 사용자의 음악 감상 습관을 학습할 수 있도록 만든 뮤직 플레이어로, 슬래시닷에 포스팅 되었으며[10] PC 매거진에서 5점 만점에 3점의 평가를 받았다.[11] 마이크로소프트와 AOL이 시냅스 플레이어를 사들이고 저커버그를 고용하겠다는 제안을 해왔으나, 그는 이를 거절하고 2002년 9월 하바드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 및 심리학을 전공으로 택했으며, 알파 엡실론 파이라는 유태인 학생 클럽에 가입하였다.[3][12][13] 대학에서 그는 평소 일리아드와 같은 서사시의 구절을 곧잘 인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7]
2학년 때 참가한 사교 파티에서 그는 프리실라 챈(Priscilla Chan)을 만났으며, 이후 두 사람은 연인 관계가 되었다.[3] 현재 의대생인 챈은 2010년 9월 팔로알토의 저커버그가 세들어 살고 있는 집으로 옮겨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3] 2010년 9월 현재 저커버그는 챈과의 중국 여행[14]과 중국에서의 사업 확장[15]을 위해 개인 교사로부터 만다린어를 배우고 있다.
Hackers: Heroes of the Computer Revolution(1984)의 저자인 스티븐 레비는 2010년 저커버그에 대해 “그는 확실하게 스스로를 해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썼다.[16][17] 저커버그는 “무언가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에서라면,” “그것을 깨뜨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18][17][19] 페이스북은 매 6~8주마다 열리는 해커톤이라는 행사를 주관하기도 했었다. 이것은 일종의 협업 프로젝트 이벤트로, 참가자들은 하룻밤동안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구현할 수 있다.[17] 페이스북이 행사 중에 필요한 모든 음악과 음식, 맥주를 제공하며, 저커버그 자신을 비롯한 많은 페이스북 직원들도 이 행사에 직접 참여했다.[19] 저커버그는 스티븐 레비와의 인터뷰에서, 이 행사가 하룻밤만에도 아주 훌륭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며[20][19] 이것이 오늘날 페이스북을 이끌어가는 아이디어의 하나이자 자기 자신의 가장 중요한 개성이기도 하다고 말했다.[21][17]
대중 잡지인 배니티 페어는 저커버그를 2010년 “정보화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올렸다.[22] 2009년 이 잡지의 동일한 랭킹에서 저커버그는 23위를 차지했었다.[23] 영국의 잡지 뉴 스테이츠먼에서 매년 실시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0인을 선정하는 투표에서는 2010년 저커버그가 16위에 올랐다.[24] 2010년 타임이 뽑은 ‘올해의 인물’에도 선정되었다.[25]
저커버그는 적록 색맹으로 인해 파란색을 가장 잘 인식한다고 알려져 있다. 파란색은 페이스북의 주색상이기도 하다.[2
하버드 대학교의 학생이었던 마크 저커버그는 2004년 2월 4일에 페이스북을 개설하였다.[1] 처음에는 하버드 대학교의 학생들만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3월에는 스탠퍼드, 컬럼비아, 예일까지 영역이 확대되었으며,[2] 그 이후 점차 많은 대학교로 영역이 확대되었다. 2005년 9월에는 고등학교에까지 영역이 확대되었다.[3]
2005년 말까지 2,000개 이상의 대학과 25,000개 이상의 고등학교의 네트워크가 생성되었다. 그 이후로는 몇몇 기업에까지 회원 영역을 넓혔으며, 마침내 2006년 9월에는 13살 이상의 전자 우편 주소를 가진 사용자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2]
또한 페이스북은 2006년 야후로부터 10억달러에 인수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벤처 캐피탈로부터 2억 5천만달러를 투자받기도 하였다. 설립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2008년 포브스 선정 세계의 억만장자에 15억 달러의 자산으로 785위에 올랐으며,[4] 동시에 유산 상속이 아닌 자수성가형 억만장자 중 최연소로 기록되었다.[5]